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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만

田泰萬

1899. 7. 25 ~ 1958.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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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전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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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의령(宜寧)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의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1919년 의령군 의령읍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99년 7월 25일 경상남도 의령군(宜寧郡) 의령읍(宜寧邑) 서동리(西洞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4, 15일 의령군 의령읍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경남 의령읍 동동리(東洞里)에 거주하는 구여순(具汝淳)은 서울에 갔다가 3월 1일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의령으로 돌아왔다. 구여순은 이화경과 함께 의령읍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들은 정용식(鄭容軾)·최정학(崔正學)·이우식(李祐植)·김봉연(金琫淵) 등을 동지로 결합하였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결의하였다. 만세시위 계획에 가담한 인사들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이와 더불어 마을 사람들에게 만세시위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4일 오후 1시 구여순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이후 시위를 주도한 인사들과 함께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면서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 시위에 참여하여 약 3,000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의령읍 장터를 행진하였으며, 의령경찰서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친 후 해산하였다. 3월 15일 시위대의 일원으로 의령향교 앞에 모여서 다시금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1,5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의령 경찰서와 의령군청 앞으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 날 시위에는 이화경(李華卿)·이원경(李源卿)·최숙자(崔淑子) 등이 이끄는 여성 단체도 합세하였다. 더불어 의령군청 직원 안의인(安義人)·정봉균(鄭奉均)도 시위대 일원으로 합류하였다. 이후 일제 군경이 시위 주도자를 색출하고 체포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시위를 주도한 인사들과 함께 붙잡혔다. 5월 31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월을 받아,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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