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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全永愚

1886. 4. 15 ~ 196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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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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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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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5) 1886년 4월 15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쌍책면(雙册面) 건태리(巾台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전하선(全夏善)을 사용하였고,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삼산영우(三山永愚)를 썼다. 무릉리(武陵里)의 유지로, 1919년 3월 21일 합천군 초계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1일 초계면 만세시위는 3월 18일부터 시작된 합천군내 만세시위의 연장선에서 진행되었다. 연일 군내 각 지역에서 만세시위가 진행되었고, 3월 23일 삼가면(三嘉面) 삼가시장 시위에는 의령군(宜寧郡) 등 인근 지역 주민들까지 합세하여 1만 명이 넘는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다. 군내 인근 지역 곳곳에서 거사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초계면의 명망 있는 유림인 시암(是庵) 이직현(李直鉉)의 조카였던 이원화(李源華)·성만영(成萬永)·김덕명(金德明)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도모하였다. 초계 장날인 3월 2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태극기 제작과 군중 동원을 위한 각 마을별 연락 분담 등의 역할을 주도하였다. 3월 21일 이원화·성만영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위해 초계장터로 나아갔다. 만세시위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오후 1시경부터 시작되었다. 이원화 등과 함께 군중에게 제작한 태극기 등을 나눠주고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불렀다. 군중이 호응하여 시위대는 삽시간에 4,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시위대를 인솔하여 장터를 행진하였고, 일부 청년들과 함께 초계우편소로 가서 건물과 내부 기물을 파괴하였다. 합천경찰서와 헌병대 사이의 연락 차단을 위해 통신선도 절단하였다. 이어서 시위대를 이끌고 일제 무단통치의 상징인 초계 경찰관주재소도 포위하고 투석전을 전개하여 유리창 등을 파손하였다. 주재소의 경찰들이 진압에 나서면서 시위 군중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급기야 공포탄까지 발사하자, 분노한 시위대와 함께 발포한 일제 경찰 2명을 붙잡아 구타하는 등 격렬히 맞섰다. 그러나 결국 합천경찰서에서 지원 병력이 도착한 이후, 경찰이 부상당한 것 등을 빌미로 시위 군중을 폭도로 규정하고 무자비한 진압을 전개하였다. 일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총검을 휘두르며 총탄까지 발사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고 그 결과 군중 2명이 사망하고 10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오후 4시경 시위대가 해산하자 대대적인 주동자 체포가 이어졌다. 함께 거사를 준비하고 시위에 앞장섰던 이원화·성만영·김명덕 등이 체포되었으나, 다행히 피신에 성공하여 종적을 감추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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