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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석

康晋錫

1890. 12. 2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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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진석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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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대동(大同)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대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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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청년회
  • · 백산무사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2) 1890년 12월 29일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용산면(龍山面) 하리(下里)에서 장로교 목사 강돈욱(康敦煜)과 모친 위돈신(魏敦信)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신천(信川)이고 이명으로 김재용(金在龍), 한성용(韓成龍)을 사용했다. 아래로는 여동생 강반석(康盤石)과 남동생 강용석(康龍錫) 등이 있다. 1919년 3·1운동 발발 당시 부친 강돈욱과 같이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듬해 1월 초(음력 11월 중순), 평양부(平壤府) 신양리(新陽里) 김용배(金用培)가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조직한 청년회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8월경 용산면 하리에서 4월에 국내로 잠입한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 이춘성(李春成)과 함께 경고문 배포 및 군자금 모집을 하였으며, 대동군 고평면(古平面) 송산리(松山里)에서 박봉욱(朴奉煜)과 홍치룡(洪致龍)을 방문하여 각각 군자금 150원과 50원을 수령하였다. 일제의 탄압이 점차 심화되자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린쟝현(臨江縣) 12동(洞) 일대에 정착하여 독립운동에 진력하였다. 이곳에서 백산무사단(白山武士團)에 가입하여 김재용(金在龍) 혹은 한성용(韓成龍)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활동하였다. 백산무사단은 1921년 5월경 이두성(李斗星)·김보환(金寶煥) 등을 중심으로 모아산(帽兒山)에 근거를 두고 조직되었고, 백두산의 무사(武士)라는 의미를 지닌다. 백산무사단은 재무·경호·통신·외무 등 5부로 조직되었다. 서기 이준삼(李俊三)의 권유로 가입하여 김석춘(金石春)과 같이 제2부에서 외무원으로 활동하였다. 이준삼과 함께 국내로 들어가 군자금을 모집하라는 명령을 받고, 1921년 3월 22일 사령서(辭令書)와 권총 1정, 탄환 25발, 경고문 50매, 군자금 영수증 100매, 여비 30원을 휴대하고 출발하였다. 다음 날 평북 자성군(慈城郡) 장토면(長土面) 호하리(湖下里)의 신훤(申楦)을 방문하여 군자금 모집을 상의하였다. 같은 해 4월 2일 홀로 자성군 열연면(閱延面) 건하동(乾下洞) 양기조(梁基祚)로부터 군자금 100원을 모금하였다. 동월 14일 평양에 도착하여 염점리(鹽店里)에서 여인숙을 하는 김준모(金俊謨)의 집에서 투숙하던 중 행적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4월 24일 오후 6시반경 신훤 등 동지 6명과 함께 평양경찰서 경찰들과 격투를 벌인 끝에 체포되었다. 1921년 8월 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3년 형을 선고받았다. 평양형무소와 경성형무소에서 7년 11개월 동안 옥고를 겪은 뒤, 1928년 3월 28일 경성형무소에서 가출옥으로 출소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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