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화
李重華1880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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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3) 충청북도 보은군(報恩君) 삼승면(三升面) 수하동(水下洞) 출신이다. 판결문 자료에 따르면 1922년 당시 43세이므로, 1880년생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군자금 모집을 전개하였다. 1919년 7월경부터 중국과 러시아를 다니면서 군자금 모집과 관련해 상하이(上海)에 있던 임시정부와 꾸준히 연락을 시도하였다. 이때 러시아 유격대 대장인 메리코포스코의 통역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20년 12월 중국 안둥현(安東縣)에서 임시정부 요원 김재봉(金在鳳)을 만나 독립운동 군자금 모집에 관한 임시정부 명령서를 받았다. 1920년 12월 하순부터 1921년 5월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잠복하며 폭탄을 제작하였다. 동시에 김재봉 등에게 임시정부 독립공채 증서 액면 총 7,600원과 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李始榮) 명의로 된 수령서 용지 10여 장을 전달받았다. 이를 가지고 경상남도 밀양(密陽)으로 가서 1921년 7월까지 군자금 모집을 지속하였다. 밀양군 북면(北面) 사포리(沙浦里)에 사는 박수엽(朴秀燁)을 찾아가 폭탄과 임시정부 독립공채를 내보이며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군자금 모집에 협조할 것을 요구하여 520원을 징수하였다. 대순리(大順里) 박병목(朴炳穆)에게 65원, 전동리(前仝里) 이병규(李炳圭)에게 1,500원 등 밀양의 각 면과 리를 돌아다니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렇게 모은 돈 중 2,800원은 김재봉에게 전달해 임시정부에 납부하도록 하였다. 김재봉은 이 돈을 가지고 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에게 갔고, 김재봉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중 1921년 10월 21일 대구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2년 2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폭발물벌칙 위반, 강도죄의 명목으로 징역 8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3월 3일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차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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