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曺秉涉

曺秉涉

1908. 11. 27 ~ 1950.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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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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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麗水)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여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여수적색노동조합 건설준비위원회
  • · 조선공산당재건 전남동맹
  • · 일본공산주의자단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908년 11월 27일 전라남도 여수군(麗水郡) 서면(西面)에서 태어났다. 1932년 경 ‘여수적색노동조합 건설준비위원회’에 참여하여 노동부 간부를 맡았고, 1938년 일본공산당(日本共産黨)의 재건운동 조직인 ‘일본공산주의자단’에 합류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4월 이후 동료였던 문석(文錫)·하순철(河順哲) 등과 교류하면서 사회주의에 대해 이론적으로 학습하였다. 그러다가 1932년 5월 무렵 여수에서 무산대중에 기초하여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해 7월 여수읍 덕충리(德忠里) 장도(獐島)에서 문석·하순철·이창희(李昌熙) 등과 함께 ‘여수적색노동조합 건설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당시 전남 지방에서는 혁명적 비합법 노동조합인 적색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한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고, 직접 공장이나 직장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산업별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준비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항만노동부를 맡아 활동하였다. 같은 해 8월 무렵에는 조직의 부서를 개편하면서 조면공장노동부를 담당하였다. 1932년 7월 동지 10명이 의암산(義岩山) 인근 해안에서 만나 여수적색노동조합 준비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정충조(鄭忠朝)를 책임비서로 삼았다. 그해 12월 무렵 여수읍 동정(東町) 정호영(鄭鎬榮)의 집에서 정충조 등과 회합하여 혁명적 노동조합 조직을 위한 준비로서 먼저 공장과 직장에서 독서회를 결성하여 노동자들을 교양하기로 하였다. 이때 「잉여가치란 무엇인가」 등을 교재로 삼았다. 1933년 7월 무렵 ‘조선공산당재건 전남동맹’의 기관지인 『적기(赤旗)』를 각지에 배포할 때에는 경상남도 부산(釜山)에 거류하면서 이 지역의 배포를 담당하였다. 1933년 봄부터 여수경찰서에서는 전라남도 경찰부 고등과의 지휘를 받아 청년 점원 노동자를 체포하였고, 이 과정에서 비밀결사 ‘여수적색노동자조합 준비회’가 드러났다. 이로 인해 같은 해 8월 무렵 일제 경찰이 전라남도 지역이 중심인 위 조직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착수하여 전국에서 80여 명을 체포하였다. 이때 다행히 붙잡히지 않고 피신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6년 오사카(大版)에서 신문배달부로 일하면서 과거 노동구제회(勞動救濟會) 오사카지부(大阪支部) 집행위원으로 활동한 홍기환(洪基奐) 등과 함께, 그 조직의 재건운동을 전개하였다. 1936년 일제 당국에 의해 합법단체인 오사카소비조합(大阪消費組合)이나 노동구제회 등이 모두 강제 해산을 당하였지만, 이후에도 계속해서 단체의 재건을 도모하였다. 1938년 7월 16일에는 일본공산당(日本共産黨)의 재건운동 조직인 ‘일본공산주의자단’에 합류하였다. 1938년 9월 일본공산주의자단에 대한 일제 당국의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면서, 9월 13일 동지 홍기환·정암우(丁岩又) 등 9명과 함께 붙잡혔다. 그해 12월 19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찰로 송치되어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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