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수
鄭福壽190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1919년 전주군 전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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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8)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읍내면(邑內面)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나이가 17세이므로 1903년생으로 추정된다. 전북 전주군(全州郡)에 위치한 기독교 계통의 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주면 남문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전주군 만세운동은 서울에서 파견된 인종익(印宗益)으로부터 1,000여 장의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천도교계가 전북의 각 지역으로 이를 배포하는 한편, 기독교계에 연락을 취함에 따라 천도교계와 기독교계의 연합으로 전개되었다. 두 교단에서는 전주면 장날인 3월 13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하였다. 특히 기독교계는 산하의 신흥학교(新興學校)와 기전여학교의 학생들을 만세운동의 주요 동력으로 상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제가 전주 시내와 전북 일대에서 독립선언문이 발견되자, 만세시위에 대한 사전 경계를 위해 전주 시내의 각급 학교에 임시 방학 조치를 취하였다. 이는 전주의 만세운동 준비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였으나, 박태련(朴泰鍊)·유병민(柳秉敏)·김한순(金漢淳)·함의선(咸義善) 등 각 학교의 주요 학생들에게 긴급하게 연락을 취하여 이들을 통해 임시 방학에 따른 학생들의 귀향을 보류시키는 한편, 만세시위에서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였다. 3월 13일 이미 전주 시내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장날에 대비하여 일제는 상당수의 헌병을 동원해 사전에 삼엄한 경계망을 펴고 전주 시내로 모여드는 주민의 거동을 예민하게 주시하였다. 그러나 강선칠(姜善七)에 의해 채소 가마니로 숨긴 태극기는 남문시장까지 무사히 운반되었다. 만세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동급생들과 함께 사전에 남문 근처에 가서 만세시위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정오경 남문에서 만세시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인 종이 울리자 천도교도와 기독교인, 신흥학교·기전여학교의 학생 150여 명 등과 함께 남문 시장의 한 가운데에서 품 속에 감추두었던 태극기를 꺼내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공감한 많은 주민이 만세시위에 참여해 함께 ‘독립만세’를 연창하였다. 동료 학생들과 함께 시위대에 동참하는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대가 남문 쪽에서 시내 중심부를 향해 행진하고 우체국 앞에 도착하자, 일제 군경들의 무력탄압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일부 주도자들이 체포되고, 부상자가 발생하면서 시위대는 잠시 흩어졌다. 그러나 시위대는 일제의 무력탄압에 의해 많은 부상자와 연행자가 발생함에 따라 다시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행진하는 만세시위를 다음날 새벽 2시경까지 반복하면서 전개하였다. 이날 만세시위 도중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6월 30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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