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현
全泰鉉1888. 4. 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7)
관련 사건
- · 와부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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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7) 1888년 4월 2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와부면(瓦阜面) 송촌리(松村里, 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서 태어났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양주군은 지리적으로 서울의 동부 및 여러 지역과 경계를 접하고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서울에서 일어난 사건이 빠르게 전파되는 지역이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양주군에서는 경기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일찍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13일 미금면(渼金面)에서 처음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된 이래 3월 31일까지 약 29회의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와부면에서는 기독교계 세력을 중심으로 미금면에 이어 양주군 내에서 2번째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모두 기독교도들이었던 송촌리의 이정성(李正成)·김춘경(金春經)·김현모(金顯模)·김정하(金正夏) 등은 3월 14일 협의를 통해 와부면 일대를 순회하는 대규모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고, 바로 다음날인 3월 15일부터 실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정성 등은 3월 15일 아침 일찍 송촌리와 인근지역에서 김덕여(金德汝)·정일성(鄭一成)·이갑동(李甲同)·오성준(吳成俊)·김덕오(金德五)·이정운(李正蕓)·김윤경(金允京)·이건흥(李建興) 등 주민 100여 명을 규합하였다. 이정성 등이 지휘하는 시위대가 조안리(鳥安里) 일대를 지날 때, 시위대의 행진 모습과 힘차게 외치는 ‘독립만세’의 구호에 크게 공감하여 김현유(金鉉有)·박경식(朴景植)·문광채(文光彩)·이내한(李來漢)·박수만(朴壽萬) 등과 함께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시위대의 규모는 어느새 500여 명 규모로 확대되었다. 시위대가 덕소리에 근접하자, 일제 헌병대가 출동하여 시위대를 가로 막고 즉각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시위대는 이를 무시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다수의 힘으로 일제 헌병대를 밀어내면서 면사무소 행진을 계속하려 하였다. 이에 일제 헌병대는 무력을 사용하여 시위대의 선두에 있던 주도자 3명을 체포하였다. 이러한 일제 헌병대의 무력 탄압은 오히려 시위대를 크게 자극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다른 주민들과 함께 붙잡힌 주도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총칼로 위협하는 일제 헌병대에 곤봉으로 맞서면서 헌병주재소까지 진격하였다. 다수의 시위대에 의해 헌병주재소까지 물러서게 된 일제 헌병들은 시위대에게 경고의 의미로 공포를 발사했으나, 시위대의 선두에서 다른 주민들과 함께 결코 물러서지 않고 일제 헌병에 대항하였다. 결연한 시위대의 자세를 확인한 일제 헌병들은 공포가 아닌 위협 사격을 하면서 주민들을 무력으로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현덕 등 40여 명과 함께 일제 헌병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했으나,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2심 판결에도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7월 5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원산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0년 3월 5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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