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근
全仲根1886. 1. 1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7)
관련 사건
- · 1919년 문경군 신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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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7) 1886년 1월 12일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 신북면(新北面) 용연리(龍淵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일제의 강요에 의해 마쓰야마 나카네(松山仲根)라는 창씨명을 썼다. 1919년 4월 15일 문경 지역에서 전개된 2번째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문경에서 최초의 만세운동은 불교계에서 주도하였다. 산북면(山北面)에 소재한 금룡사(金龍寺)의 지방 학림 학생 18명이 태극기 4장을 준비하여 대하리(大下里)의 순사주재소 부근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만세시위 소식을 듣고 급파된 일제 헌병 6명에 의해 학림 학생 18명 전원이 체포되어 일제 경찰서로 연행됨으로써 최초의 만세시위는 초기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로부터 이틀 뒤인 4월 15일 김병수(金炳秀), 신태인(申泰仁)과 함께 문경의 두번째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날 신북면의 평천리(平川里)와 용연리 부근의 도로 보수 공사에 일제로부터 노동력을 징발당하여 동원되었다. 밤까지 계속된 도로 보수 공사 중에 함께 동원된 김병수, 신태인과 의기투합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즉시 실행에 옮겼다. 이날 오후 8시 경 도로 보수 공사에 동원된 다른 주민 40여 명을 규합하여 갈평리(葛坪里) 장터로 가서 이들을 지휘하여 시위대열을 형성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갈평리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 헌병 3명이 출동하여 즉시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이를 무시하고 시위대를 지휘하여 더욱 큰 목소리로 ‘독립만세’를 연창하며 만세시위를 지속하면서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이에 일제 헌병대는 시위대를 향해 위협사격을 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들을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의 주도자로 지목되어 김병수·신태인과 함께 일제 헌병대에 붙잡혔다. 일제 헌병대로부터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점이 인정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2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징역 6월을 받았다.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고, 11월 12일 만기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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