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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海鵬

鄭海鵬

1924. 12. 9 ~ 1991.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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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海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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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榮州)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상지회
  • · 안동공립농림학교 조선회복연구단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924년 12월 9일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에서 태어났다. 안동공립농림학교(安東公立農林學校) 9기생으로, 1943년 상지회(尙志會)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상지회는 안동공립농림학교 9기생이었던 황병기(黃炳基)·이갑룡(李甲龍)·장병하(張炳夏) 등이 만든 면학클럽이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근로봉사라는 이름의 노동에 동원되면서 민족의식을 자각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회원을 늘려나가던 중 더욱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결사체로 확대하기 위해 1944년 10월 조선독립회복연구단(朝鮮獨立回復硏究團)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조직하였다.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은 국내외 정세에 대처하고 때를 기다려 거사하여 일제의 공공기관 파괴 및 후방을 교란하여 연합국의 상륙을 유리하게 함으로써 국권을 회복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이를 위해 조직을 참모부·연락부·교화부·신풍부·특공부로 구성하였고, 8기생의 졸업식인 1944년 12월 22일을 전후하여 적당한 날에 거사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인원 규합을 거쳐 총 51명이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안동공립농림학교 9기생과 10기생이 주축이었고, 그 외에 8기와 10기생을 비롯한 교사·일반인·중학생까지 참여하였다. 연구단의 1차 타격 목표는 헌병파견대(憲兵派遣隊)와 안동경찰서(安東警察署)였으며, 교통과 통신의 두절을 위한 특공훈련도 자체적으로 실시하였다. 1945년 2월 17일을 최종 거사일로 정하고 여러 준비를 거쳤으며, 안동에서의 거사 이후 의성(義城)으로 진출해 대구(大邱)에서 올라오는 일본군과의 결전까지도 결의하였다. 그러나 거사를 준비하던 중 황해도의 동지와 주고받던 편지가 일제 경찰의 검열에 걸리면서 단원들이 붙잡히기 시작하여, 3월 말에는 대부분의 단원들이 검거되어 안동경찰서에 수감되었다. 이때 일제 경찰에 붙잡혀 안동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광복 전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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