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學鎭
鄭學鎭1912. 7. 25 ~ 1968. 10.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프롤레타리아 과학연구소 조선제일지국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7)
관련 사건
- · 대구격문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7) 1912년 7월 25일 경상북도 상주군(尙州郡) 상주면(尙州面) 서성정(西城町)에서 태어났다. 일제 말기에는 삼달정창(三達正昌)이라는 창씨명을 쓰기도 하였다. 독립운동 당시에는 대구(大邱)에 거주하였다. 1927년 대구공립상업학교(大邱公立商業學校)에 입학하였다.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거족적인 항일운동으로 발전하자, 전국의 학생과 민중이 함께 궐기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인식하였다. 이에 호응하기 위해 1930년 2월 15일 시위운동을 추진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연행되었고,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났다. 대구상업학교의 시위운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목받아 1931년 10월 대구상업학교 5학년 재학 중 같은 학교 학생 서상조(徐相祚)의 권유로 프롤레타리아과학연구소 조선제일지국(朝鮮第一支局)에 가입하였다. 이 조직은 일본 도쿄(東京)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사회개혁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실현할 목적으로 결성된 프롤레타리아과학연구소와 연계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기관지 『프로과학』을 발행하여 일본 내 70여 개소에 지국을 두고, 조직의 활동을 담은 『프롤레타리아 과학연구소 뉴스』를 발행하였다. 1930년 12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대구상업학교 학생들이 대구에 조선제일지국을 설치하였다. 조선제일지국은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할 목적으로 산하에 농민운동·학생운동·노동운동 세 부문을 두어 대중을 획득하고, 노동쟁의·동맹휴학·동맹파업에 대한 지도와 실행을 위해 활동하였다. 조선제일지국에 가입한 후 같은 학교의 서상조·서오룡(徐五龍)·이동우(李東雨) 등과 함께 매주 2회 정도의 독서회 활동을 통해 사회과학 관련 잡지를 탐독하면서 사회 인식을 심화시키고 사회주의 선전에 힘썼다. 그리고 지국원 획득을 포함한 조직 확대를 위해 서오룡과 함께 학교 서클을 맡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 고취에 힘쓰는 한편 학교의 각 서클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일제의 본질을 폭로하고 친일단체의 격멸을 주장하는 『프롤레타리아 과학연구소 지국 뉴스』를 발간하여 지국원에게 배포하고, 일본에 있는 프롤레타리아 과학연구소에도 발송하였다. 1931년 12월 대구에서 일본군 제80연대, 대구고등보통학교, 대구역 등지에 살포한 반전반제(反戰反帝) 내용의 이른바 ‘대구격문 사건’으로 사사키(佐佐木隆)와 서오룡이 붙잡혔다. 이때 이들의 집에서 일본에서 발행된 『프롤레타리아과학연구소 뉴스』와 대구에서 발행한 『프롤레타리아 과학연구소 지국 뉴스』가 발견되어 조직의 전모가 드러났다. 이 일로 1931년 12월 붙잡혀 1932년 1월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32년 12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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