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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파

張世播

1919. 10. 19 ~ 1945.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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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장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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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대구(大邱)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대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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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구사범학교 연구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대구사범학교 비밀 결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919년 10월 19일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 동인동(東仁洞)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죽본후일(竹本後一)을 썼다. 대구사범학교에 재학하였으며, 동료 학생들과 함께 비밀결사 연구회(硏究會)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1941년 1월 하순 강두안(姜斗安)·임병찬(林炳讚)·안진강(安津江)·김영복(金榮宓)·최락철(崔洛哲)·윤덕섭(尹德燮)·이무영(李茂榮) 등과 함께 대구사범학교 연구회를 조직하였다. 연구회는 표면적으로는 학술 연구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실력양성을 바탕으로 하여 민족의식 앙양을 목적으로 하였다. 연구회에서 공업부 책임 겸 사무원 역할을 맡았다. 연구회 동료들과 함께 졸업 후 각자 교사가 되어 우수한 아동들을 대상으로 수재교육을 실시하여 독립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를 위해 현지에서의 활동 상황 및 성과를 매월 1회 사무원에게 보고하고, 사무원은 다시 각지에서 보고된 상황을 취합하여 전체 회원에게 공유하기로 하였다. 1941년 3월 졸업 후 의성군 안평국민학교의 교사로 부임하였다. 학교에서 “일본에서는 황국신민서사를 제창하지 않으면서 조선에서만 그런 서사를 제창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내선일체가 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조선인은 입으로는 이를 제창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어디까지나 조선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며 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 민족의식과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8기생으로 충남 홍성(洪城)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정현(鄭鉉)이 갖고 있던 『반딧불』이 일제 관헌에게 입수되면서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조직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대구사범학교 관련자 300여 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1년 8월부터 2년 3월의 예심 기간을 거쳐 1943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45년 6월 13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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