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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有棟

有棟

1900. 11. 18 ~ 1950.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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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有棟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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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居昌)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거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북경유학생회
  • · 조선학생총연합회
  • · 북경한국유학생회
  • · 북경한인청년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1928년 한인청년회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00년 11월 18일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북상면(北上面) 갈계리(葛溪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임훼성(林毁城)이다. 서울 중동학교와 중앙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7월 무렵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대학 예과와 베이징사범대학에 다니며, 북경유학생회(北京留學生會)에 합류해 활동하였다. 북경유학생회 소속으로 1923년 3·1절 기념식과 5월 북경유학생 환영회 등을 개최하여 한인 유학생과의 연대를 도모하였다. 더불어 북경유학생회 내에 강론부를 설치하고 매월 강연과 토론회를 개최함으로써 민족의식과 투쟁의식을 고취하였다. 1924년 여름방학 기간 중 귀향하여 조선학생총연합회(朝鮮學生總聯合會)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조선학생총연합회의 가입 권유 임무를 맡고 중국으로 파견되었다. 베이징의 한인유학생이 늘어나면서 유학생회가 두 단체로 분리되자 양 단체가 자발적으로 해체를 결의하였다. 1924년 12월 12일 평민(平民)대학에서 베이징한인유학생대회를 열어 북경한국유학생회(北京韓國留學生會)라는 통일단체를 조직하였다. 이때 정래동(丁來東)·김천우(金天友) 등 8명과 함께 집행위원으로 선정되어 조직을 이끌어나갔다. 1927년 5월 14일 북경 평민대학에서 북경사회과학연구회 회원인 기노춘(寄老春)·김천우 등과 함께 북경한인청년회(北京韓人靑年會)를 조직하였으며, 김천우·기노춘·강기봉(康基鳳) 등 8명의 집행위우너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북경한인청년회의 강령으로 청년 대중의 단결을 공고히 하여 민족해방운동의 완성을 도모하였다. 민족유일당 결성을 위한 전위조직으로 각지의 청년회연맹 조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1927년 6월 베이징사범대학교를 졸업한 후 귀국하여 서울 낙원동(樂園洞)에 머물던 중, 그해 7월 5일 오전 서대문경찰서 고등계 경찰에 붙잡혔다. 일제 경찰이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여 같은 해 7월 25일 풀려났다. 이후 신간회(新幹會) 거창지회에 설립에 참여하였으며, 11월 신간회 차기대회 준비위원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1928년 2월 초 이른바 제3차 조선공산당사건으로 붙잡혔으나, 그해 2월 13일 풀려났다. 같은 해 7월 12일 서울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신의주경찰서로 압송되었다. 그해 12월 12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1929년 3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풀려난 후 중외일보(中外日報) 상무로 재직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 순국의열사봉건회(殉國義烈士封建會)·선열사적방사위원회(先烈史跡訪査委員會)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7년 미소공위촉성독립전취민중대회상비회(美蘇共委促成獨立全取民衆大會常備會)와 민주주의독립전선준비위원회(民主主義獨立戰線準備委員會)의 위원직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양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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