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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鎭河

鎭河

1912. 10. 21 ~ 1957.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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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鎭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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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固城)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고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고성청년동맹
  • · 고성농민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912년 10월 21일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 대가면(大可面) 송계리(松溪里)에서 태어났다. 1930년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 2학년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을 지원하는 동조 시위를 주도하였다. 1931년에는 고성지역 사회단체에 참가하여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 1월 16일 오후 9시경 3학년 정인수(鄭仁守)의 집에서 김병호(金柄琥)·정갑생(鄭甲生)·정한영(鄭甲生) 등 20여 명의 동료 학생들과 모여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는 동맹휴교를 단행하기로 결의하고 ‘노예적 교육 폐지’, ‘경찰 침입 금지’, ‘광주학생 석방’이라는 문구가 적힌 격문을 작성하였다. 이튿날인 1월 17일 오전 9시 30분경 학교 교정에서 교장의 조회 훈시가 끝나자 조방제(趙邦濟)가 연단에 올라가 “광주학생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들도 조선 모든 생도와 행동을 같이 하자”고 부르짖으며 만세 삼창을 하였다. 이를 신호로 200여 명의 학생들을 이끌고 교문 밖으로 나가 진주 읍내 각 학교를 행진한 후 사립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교정 안으로 들어가 격문을 살포하며 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30년 3월 13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주거침입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5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풀려난 후 고성으로 귀향하였다. 1931년 3월 22일 경남 고성청년동맹 정기대회에서 도대의원(道代議員)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고성농민조합 간부로 선임되어 농민들을 대상으로 농회비·축산조합회비의 납부 거부, 소작쟁의 등을 주도하고 야학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일로 1931년 11월 4일 고성농민조합 동료 등과 함께 고성경찰서에 붙잡혔다.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옥고를 겪은 뒤, 1932년 11월 8일 풀려났다. 1933년 11월 12일 고성 지방의 농민조합운동 검거 열풍으로 인해 서대문경찰서에 재차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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