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화
鄭靖和1900. 8. 3 ~ 1991. 11. 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국독립당
- · 한국혁명여성동맹
- · 한국애국부인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윤봉길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0년 8월 3일 서울에서 수원유수를 지낸 아버지 정주영(鄭周永)과 어머니 김해 김씨 사이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호는 수당(修堂), 아명은 정묘희(鄭妙喜)이다. 11세인 1910년 동농(東農) 김가진(金嘉鎭)의 아들 김의한(金毅漢)과 결혼하였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1919년 10월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자, 역시 중국으로 망명길에 나섰다. 1920년 1월 초순 한겨울 밤 서울역에서 의주를 거쳐 펑톈(奉天)에 도착하였다. 열차로 산하이관(山海關)과 톈진(天津)을 거쳐 상하이에 안착하였다. 망명 후 정정화로 개명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인 이시영(李始榮)·이동녕(李東寧)·신규식(申圭植) 등을 만났다. 남편을 만났으나 당시 생계유지가 어려워지자, 시아버지와 임시정부 요인 등과 상의한 후 국내잠입을 결행하였다. 1920년 3월 상하이에서 이륭양행 배편을 이용하여 신의주 대안인 안둥에 도착하여 최석순(崔錫淳)의 도움으로 신의주에 도착하여 세창양복점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열차편으로 서울로 들어오는데 성공하였다. 결과적으로 일가의 도움으로 모금한 독립자금을 휴대하고 역순으로 상하이로 향하였다. 1921년 늦은 봄에도 두 번째로 국내에 밀파되어 맡은 임무를 완수하고 상하이로 돌아갔다. 이러한 와중에 안둥과 신의주에 설치된 독립운동거점은 일제 경찰에 발각되고 말았다. 당시 상하이 교포사회는 적지 않은 파열음을 내고 있었다. 교포사회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다양한 학문 수용에 진력하였다. 이시영과 유인욱(柳寅旭)은 스승이 되어줬다. 이시영은 한학과 역사 서적을 주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유인욱은 국제정세를 이해하기 위한 영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한편, 영어 공부를 도와주었다. 1922년 6월 세 번째로 국내로 잠입하다가 신의주에서 붙잡혀 곤욕을 치렀다. 7월 4일 상하이에서 시아버지 김가진이 사망하자 시가에 상청(喪廳)을 차리고 조문객을 받는 등 며느리로서 역할을 다하였다. 이후 상하이로 갔다가 10월에 일시 귀국하여 근화학원에서 영어를 공부하며 미국유학을 준비하였다. 이듬해 친정아버지마저 타계하여 미국유학은 좌절되었다. 1924년 12월 다섯 번째로 국내에 들어와 6개월 동안 친정집에서 체류하며 국내 정세를 살펴보았다. 1926년 남편이 영국인이 경영하는 버스회사인 공공기차공사에 취직함에 따라 생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1928년 아들 김후동을 낳았다. 1930년 7월 가족들에게 아들을 보여주기 위해 여섯 번째로 국내에 귀국하여 오빠 집을 왕래하면서 6개월 정도 정양을 한 후 다시 상하이로 돌아갔다. 1932년 윤봉길 의거 직후, 그해 5월에 가족들은 저장성(浙江省) 자싱현(嘉興縣)으로 피신하였고, 이후 1940년 충칭(重慶)에 정착할 때까지 8년간의 피난생활을 하였다. 그 과정인 1935년 9월부터 약 6개월간 김구(金九)의 모친 곽낙원(郭樂園)을 모셨다. 1938년 7월 광둥성 광저우(廣州)로 이동할 때부터 충칭에 안착할 때까지 임시정부 안살림을 책임지고 요인들을 모시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1940년 4월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하는 한편, 6월에는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 간사를 맡았다. 1941년 10월 임시정부 산하에 3·1유치원이 설립되자 연미당(延薇堂)·이국영(李國英)·강영파(姜映波)·김병인(金秉仁) 등과 교사로 나섰다. 1943년 2월 한국애국부인회가 결성될 때 집행위원 겸 훈련부 주임을 맡은 이래 아동국어강습반을 조직하는 등 일제 패망 후 귀국에 대비하여 한글교육 강화에 힘썼다. 또 개천절과 3·1절이나 국치일 기념식 거행을 통한 대동단결을 도모하는 데도 앞장섰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감찰위원회 위원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하였다. 한국전쟁 와중에 남편이 납북되는 비극을 맞았고, 자신은 ‘부역죄’로 투옥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회고록인 『녹두꽃』과 『장강일기』를 남겼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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