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樂倫
鄭倫1884. 3. 7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청년외교단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봉성농우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청년외교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4년 3월 7일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노은면(老隱面)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구창(李九昌)이고, 한자가 다른 정낙륜(鄭洛倫)으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1920년 당시에는 서울 수은동(授恩洞)에 거주하였다. 1919년 6월 이병철(李秉澈)·조용주(趙鏞周)·연병호(延秉昊)·송세호(宋世浩)·안재홍(安在鴻) 등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국내의 상황을 전달하고 독립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대한민국청년외교단(청년외교단)을 조직하였을 때 특별단원으로 가입하였다. 특별단원으로써 회원 및 독립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8월 상순에는 『대동보(大同報) 300장을 인쇄해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11월 대한애국부인회가 일제 경찰에 의해 발각되면서 청년외교단도 함께 노출되어 이병철·안재홍·김홍식 등은 붙잡혔다. 이때 상하이(上海)로 탈출하여 임시정부에 참여하였으며, 1920년 6월 궐석재판에서 징역 3년을 받았다. 임시정부에서는 해사부(海事部) 참사(參事)의 임무를 맡았다. 1921년 2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인 조덕진(趙德津)·김진우(金鎭宇) 등과 의논한 뒤 임시정부의 활동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국내로 잠입하였다. 서울 사직동(社稷洞)의 김광희(金光熙) 집에서 머무르며 충청남도 당진군(唐津郡) 회덕면(會德面) 옥금리(玉琴里)에 사는 방효상(方孝相) 등과 활동자금 모집 활동을 진행하였다. 그러다 7월 12일에 발각되어 종로경찰서에 붙잡혔다. 풀려난 이후에는 만주로 건너가 활동을 이어갔다. 1927년 2월 6일 만주 봉황성(鳳凰城)에서 봉성농우회(鳳城農友會)가 조직되었을 때 박광(朴洸)·강한조(姜漢朝) 등과 함께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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