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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成涉

成涉

1880. 1. 2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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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成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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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희천(熙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희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독립청년단(대한청년단)
  • · 천마산대

포상 정보

  • · 독립장(2012)

관련 사건

  • · 희천군 창참주재소 습격사건(희천습격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2012) 1880년 1월 21일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북면(北面) 명문동(明文洞)에서 빈한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0세 경부터 약 1년간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으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2년 여름 동생 임성률(林成律) 등 2명과 함께 희천군 북면에서 천마산대(天摩山隊)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독립청년단(獨立靑年團)을 조직하였다. 이후 천마사령(天摩司令) 최시흥(崔時興)의 부하인 최오산(崔午山)의 권유로 단원을 모집하였고, 천마산대와 연락을 취하며 활동하였다. 1923년 (음)7월 말경 최오산 등 천마산대 대원 3명이 명문동 요참(要站)에 있는 임성률의 집에 숙박했는데, 이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성률이 희천경찰서 북면 경찰관주재소에 체포되었다. 이에 최오산 등 대원 17명이 임성률을 구출할 계책을 세우자, 주재소 근처에서 경찰관의 동정을 정찰하며 습격할 기회를 노렸다. 같은 해 9월 21일 밤 독립청년단과 천마산대의 연합대원 30여 명이 주재소의 전화선을 끊은 후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천마산대 대원들이 명문동 창참(倉站)주재소를 포위하고 장총을 쏘며 공격하자, 독립청년단 단원들과 함께 주재소와 북면사무소 등 여러 곳에 불을 질렀다. 일제 경찰과의 교전 과정에서 도순사(道巡査) 스가와라 게이타로(菅原計太郞)와 마을 주민 1명이 죽고 4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면사무소와 주재소가 전소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던 일제 경찰이 독립청년단 단원들의 집에 불을 지르면서 민가 20여 채가 소실되었고, 이후 굶주리며 유리걸식하는 단원들의 가족들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그해 9월 23일에는 강계군(江界郡) 입관면(立舘面) 양피동(陽皮洞) 산속까지 독립청년단을 추격해 온 일제 경찰에게 단원 2명이 목숨을 잃고 6명이 붙잡혔다. 결국 희천·전천(前川)경찰서와 평북경찰부의 연합수색으로 수십 명의 천마산대 대원·독립청년단 단원들과 함께 붙잡혔다. 이후 희천군 습격사건으로 붙잡힌 관련자 가운데 희천서의 취조 과정에서 심한 고문을 당해 불구가 되거나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이 사건은 ‘희천 고문사건’으로도 불리며, 사회적으로 큰 분노를 야기시켰다. 1924년 3월 2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방화죄·강도죄·살인방조죄로 징역 1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4월 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 취하로 형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1935년 8월 22일 약 11년 5개월 동안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으나, 옥고를 겪는 과정에서 부인은 행방불명되었고, 자식 중 2남 2녀는 병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박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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