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칠
鄭文七미상 ~ 1909. 12
관련 단체
- · 정문칠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1) 자료의 한계로 출생시기와 출신지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1909년 1월경부터 의병장으로 활동하면서 경상북도 영해(寧海)·영덕(盈德)·진보(眞寶)·영양(英陽)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등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특사 파견을 구실로 광무황제(고종)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곧이어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여 경찰권과 사법권 등을 박탈하였으며, 대한제국 군대까지 해산시켰다. 이에 한동안 소강 상태였던 의병항쟁은 이전보다 더욱 큰 규모로 다시 시작되었다. 이처럼 의병들의 항일투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일제는 각지에 병력을 파견하여 한층 더 가혹하게 ‘토벌’ 작전에 나섰다. 1909년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의병세력이 점차 약화되던 시기에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같은 해 7월 9일에는 박현찬(朴賢燦), 이귀전(李貴錢), 신동건(申東建) 등 약 30명의 의병들을 이끌고, 영덕군 심곡(深谷)에서 진보군 헌병들과 전투를 벌였다. 그해 11월 13일에는 김우득(金宇得)을 포함한 부하 13명을 거느리고 영덕군 북면(北面) 보곡동(洑谷洞)에서 황치운(黃致雲)·김형곤(金衡坤)으로부터 엽전 200냥과 당목(唐木) 등 40원 상당의 물품을 징수하였다. 이어서 11월 14일 오전 1시 경에는 보곡동에 거주하는 전 면장 신창휴(申昶休)로부터 군자금으로 500냥을 모집하려고 하였으나, 요청에 응하지 않아 처단하였다. 11월 16일 오후 8시 경에는 영해군 서면(西面) 창수원(蒼水院)에서 주막을 경영하는 하대윤(河大潤)을 의병들을 밀고했다는 이유로 총살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펼치다가 1909년 12월 21일 영해군 오서면(烏西面) 부근에서 부하 14명과 함께 일제 헌병과 헌병보조원 등을 만나 교전하다가 패하면서 붙잡혔다. 이후 일제에 의해 사망하였다. 경주진위대 해산 군인 출신인 신대여(申大汝)가 자신을 ‘덕남대장(德南大將)’이라고 칭하면서 남은 의병들을 대신 이끌고 항일투쟁을 지속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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