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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수

田海壽

188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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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전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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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구(楊口)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양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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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최군심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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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강원도 양구군(楊口郡)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당시 28세이므로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전해수(田海秀)를 썼다. 주소지는 양구군 해안면(亥安面) 만대동(萬垈洞)이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7년 (음)9월부터 강원도 양구군에서 최군심(崔君心) 의병부대에 가입하여 의병활동을 하였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강제적으로 체결하여 한국의 내정을 장악하고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러한 일제의 행동에 분노한 전국 각지의 애국지사들은 국권회복을 위해 의병을 일으켰다. 1907년 (음)9월 강원도 양구군에서 최군심 의병부대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의병에 투신하였다. 100여 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무장하고 양구군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음)10월 15일 양구군 해안면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붙잡혔다. 1909년 2월 9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流刑) 5년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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