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학
全中學1854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중호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강원도 정선군(旌善郡) 서면(西面) 마항동(馬項洞, 현 정선군 정선읍 회동리)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8년 당시 55세이므로 1854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이중호(李仲鎬)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맺고 외교권을 박탈하자, 고종은 이 늑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1907년 7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이준·이위종 등 특사를 파견하였다. 일제는 이 사건을 빌미로 그해 7월 30일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다. 이어서 친일파 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를 내세워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의 차관정치가 시행되고,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 조치가 취해졌다. 군대 해산에 불복한 서울시위대의 봉기가 같은 해 8월 1일 발생하였고, 이후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 수원진위대(水原鎭衛隊) 소속의 강화분견대(江華分遣隊) 등 지방의 진위대가 속속 봉기하여 의병대열에 합류하였다. 군대해산 이후 의병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가면서 강원도 지역에서는 1907년 8월 5일 민긍호(閔肯鎬)의 주도로 원주진위대가 지방 진위대 가운데 처음으로 봉기하여 일본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거듭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주변 지역에서도 여러 의병장들이 하나 둘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가담하면서 의병투쟁은 강원 전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중호 의병부대에 가담하였고, 1907년 7월 10일 이달수(李達壽) 등을 의병으로 모집하는 등 의병 소모(召募)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중호 의병부대에서 의병 소모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08년 일제에 붙잡혔다. 같은 해 9월 12일 대전지검 공주지청에서 폭동의 혐의로 조사 후 기소되었다. 같은 달 16일 공주구재판소(公州區裁判所)에서 이른바 폭동수종죄로 태(笞) 10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원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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