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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묵

全信默

1873. 4. 1 ~ 1912.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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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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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전신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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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和順)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양회일 의병부대
  • · 이윤선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6) 1873년 4월 1일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도림면(道林面) 증동(甑洞, 현 이양면 증리)에서 동지(同知) 전유성(全有成)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천안(天安)이고, 자는 우현(友鉉)이다. 한의학에 조예가 깊은 한의사였다. 1906년 말부터 1907년까지 고향인 증동의 쌍산(雙山)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한 양회일(梁會一) 의병장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호남에서의 의병활동은 1906년 말부터 본격화되었다. 의병장 양회일(梁會一)은 능주군(綾州郡)의 유력한 명문가에서 태어나, 1906년 말경 전남 화순(和順)과 능주(綾州)를 중심으로 한 의병부대인 이른바 ‘쌍산의소(雙山義所)’를 결성하였다. 신분을 막론하고 능력을 위주로 지역 사람들을 불러 모아 구성된 쌍산의소는 유생(儒生)과 산포수(山砲手)가 조화를 이뤄 전문적이면서도 조직적인 전투 능력을 갖춘 의병부대였다. 이때 참모 역할을 담당한 임노복(林魯福)의 제의를 받고 차재문(車在文)과 함께 양회일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이후 조직이 편성될 때 참모진에서 기록과 문서를 관장하는 기사(記事)에 임명된 후, 사무를 관장하면서 군사훈련과 무기 제작, 군자금 모집 등에 관여하였다. 1907년 4월 21일 능주로 진격한 의병부대는 일제 군경 주재소와 경무서(警務署)·우편소(郵便所) 등을 습격하였다. 이튿날 화순의 군아(郡衙)와 헌병대 분파소(分派所)를 습격해 점령한 후 통신을 끊어 거점화하였다. 그러나 동복(同福)의 도매치(都埋峙)에서 진을 치고 있던 중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패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병기를 옮기는 역할을 담당하는 병기전운사(兵器戰運使)로 참여하였다가, 일본군의 습격을 받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이때 의병장의 동생인 양회룡(梁會龍)이 탄환에 맞아 중상을 당한 후 체포되었고, 정세현(鄭世鉉) 등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또한 의병장 양회일을 포함한 다수의 간부들이 체포됨으로써 의병부대는 해산되었다. 이후 양회일이 지도(智島)로 유배를 떠났고, 주요 간부인 임노복·임창모·양공거 등과 함께 모진 고진을 받은 후 겨우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모진 고문으로 몸이 쇠약해지고 일제의 감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의병활동에 계속 참여하였다. 1907년 12월에는 유배지에서 방면되어 돌아온 양회일이 이윤선(李允善)·임창모 등과 함께 호남창의소(湖南倡義所)를 조직하였다. 이때의 기록인 『임전일록(臨戰日錄)』에 의하면 의병부대 내 의사 역할을 하는 주의(主醫)로 참여하였다. 하지만 고문의 후유증으로 병이 깊어져, 1912년 3월 7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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