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홍도
莊弘道1882 ~ 1908. 6. 2
포상 정보
- · 애국장(200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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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6) 자료에 따르면 1882년생으로 추정된다. 출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연고지는 의병 혹은 의병 협조자로 체포된 지역인 황해도 장연군(長淵郡) 순택면(蓴澤面) 상장동(上庄洞) 일대로 추정된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인한 외교권 상실 및 1907년 군대해산 등으로 전국적인 저항의 분위기가 고조되자, 황해도에서도 의병봉기가 활성화되었다. 1907년 황해도 동부에서는 화서학파 관련자를 중심으로 평산(平山) 의병이 봉기하였고, 장연군·문화군·송화군(松禾郡)·신천군(信川郡) 등의 황해도 서부에서는 우동선(禹東鮮)·신경칠(申敬七) 등이 거병하였다. 신경칠은 송화군에 거주했던 진사였다. 위와 같은 여러 의병부대 가운데 어느 곳에 가담했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1908년까지 격화되었던 의병전쟁에서 많은 참여와 협조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1908년에는 일본군이 황해도에 부설된 경의선(京義線)을 기준으로 서부지역에서의 의병활동이 심화되고 있다고 파악하고, 이에 대한 집중적인 진압작전에 착수하였다. 일본군은 군(郡)·현(縣) 단위뿐만 아니라 면(面)·리(里) 단위에서 개별적으로 의병 및 의병협조자를 잡아내거나 투항을 권함으로써 의병부대의 기반을 약화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황해도의 일제 경찰기관은 1907년 161개소에서 1908년 412개소로 크게 확대되었다. 또한 헌병 역시 4,600여 명을 증원하는 등 대대적 확대를 통해 황해도 지역의 의병 진압에 나섰다. 이같은 일제의 개별적 진압대로서 오오하시(大橋) 소위(少尉)의 헌병대와 미와(三輪) 특무조장(特務曹長)의 송화경찰분서(松和警察分署) 등의 부대는 1908년 6월 초 장연읍(長淵邑)과 그 주변의 순택면·신화면(薪化面) 일대를 돌며 의병부대와 전투하였다. 뿐만 아니라 의병 병사 및 협조자 개개인에 대한 투항권고 및 검거를 차례로 진행하여, 20여 명의 의병 및 협조자들을 붙잡았다. 개개인 단위로 붙잡힌 의병 및 협조자 중에서는 투항하는 이도 있었으나, 상당수는 저항하거나 혹은 붙잡힌 후 탈출을 시도하다가 살해당하였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1908년 6월 2일, 27세를 일기로 장연군 순택면 상장동에서 송화경찰분서 수비대에게 붙잡혔고, 저항하다가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구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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