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선
張浩善미상 ~ 1908. 5. 3
관련 단체
- · 우동선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5) 자료의 한계로 출생연도와 출신지는 확인할 수 없다. 우동선(禹東鮮)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동생인 장호길(張浩吉)도 의병부대에서 중장을 맡았다. 우동선 의병부대에서의 장호선의 중장 직위는 조선 후기 군제 편제의 주요 직임이었던 중군장(中軍將)으로 보인다. 중군장은 보통 명목상의 대장을 대신해 군사작전 및 예비병력의 투입, 군수물자 분배 등의 군정 실무를 책임지는 실질적인 지휘관으로서 군사적 소양이 요구된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군사적 소양 혹은 통솔능력을 갖춘 갖춘 직업군인 혹은 지방 포군(砲軍) 출신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황해도의 경우 동학농민운동의 북접군에 호응하여 한강 이북에서 가장 큰 봉기 규모를 자랑하였다. 또한 동학농민운동이 진압된 후인 1895년경에 갑오개혁과 을미사변으로 촉발된 의병 봉기에도 이들이 합류하여 권력자들이 의병을 사실상 동학여당으로 간주할 정도였다. 또한 산악지대가 많으면서도 주요 교통로라는 특성상 조정이 권장한 지역 포군(砲軍)도 상당하였다. 한편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인적 연결 측면에서도 화서학파(華西學派) 유학자들이 서북에서 벌인 적극적인 활동으로 박문오(朴文五) 형제를 중심으로 하는 사승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또한 을미의병 호좌의진의 패배 이후 중국으로 도피하였던 유인석(柳麟錫)도 다시 귀국한 이후 황해도 평산군(平山郡)의 산두재(山斗齋)나 은율군의 흥도서사(興道書社) 등을 통해 제례 및 강학 활동을 전개하며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하여 외교권을 강탈하자, 이에 저항하여 전국민의 항일 봉기와 결집이 촉발되었다. 이에 조맹선(趙孟善)·박장호(朴長浩) 등이 1906년경 평산에서 거병하였으며, 황해도 서부에서도 지역 유림인 조윤봉(趙允奉)·강만석(姜萬石)·장동찬(張東燦)·고익균(高益均) 등이 신천군 출신 우동선을 ‘정동의려대장(征東義旅大將)’으로 추대하여 거병하였다. 이 과정에서 의병부대 중장의 직위를 맡아 초기 거병부터 주요한 위치를 수행하였고, 동생인 장호길도 함께 의병부대에 중심인물로 참여하였다. 황해도 서부 산악지역에서 일제를 대상으로 한 유격전에 참전하면서, 중군장으로서 우동선 의병부대의 실질적인 군무를 주로 담당하였다. 특히 일본군이 “지극히 교묘하여 아직 전혀 진정할 수 없다”라고 까지 평가한 황해도 의병의 격렬한 항쟁의 상당수를 의병부대의 중장으로서 주도하였다. 1908년 5월 3일 장연군 신남면(薪南面) 휴동에서 은율분견소에서 파견된 일본군 헌병대와 교전하다가 총탄에 맞고 사망하였다. 동생인 장호길도 이 전투에서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구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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