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장한순

張漢順

1883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장한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전남 함평(咸平)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함평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이강산(李江山)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대야면(大野面) 송정리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3년생으로 추정된다. 1909년 전남 함평에서 이강산(李江山)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하였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정미7조약(한일신협약) 강제에 뒤이은 일제의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 강제 해산이 자행되었다. 해산된 군인들이 불복하여 봉기해서 서울시내에서 항일 시가전을 벌인 후 의병 참여로 인하여 항일의병 무장투쟁은 그 양상이 의병전쟁과 같은 양상을 바뀌었다. 1909년 7월에 전남 함평 대야명에서 의병을 일으켜 김태원(金泰元) 휘하에서 활약한 이강산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이후 1909년 나주의 헌병분파소 및 구례의 파견대 소속 밀정인 이판안(李判安)·김정태(金正泰)·최치도(崔致道)·박복남(朴福男) 등을 처단하는 것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1909년 9월부터 실시된 일제의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으로 호남 의병들의 기세가 위축이 되었고 더이상 일본군과 맞서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되자 1909년 10월 초에 의병 30여 명과 함께 자진 체포되었다. 1909년 12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 및 모살죄로 종신 징역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공소 취하로 옥고를 겪었으며, 1912년 징역 12년으로 감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