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장선군

張先君

1877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장선군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금산(錦山)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금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문태수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문태수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6) 충청남도 금산(錦山) 출신이다. 1909년 판결문에 따르면 1877년생으로 추정된다. 의병 활동에 나서기 전까지 건물을 짓는 대목장[大工]이었다.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서울과 원주(原州)의 군인들의 무장봉기를 시작으로 정미의병(丁未義兵)의 항쟁이 전개되었다. 처음 의병 활동에 나선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1909년 당시 전라북도 무주(茂朱) 덕유산(德裕山)을 근거지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리고 있던 문태수(文泰洙) 의진의 일원으로 충청북도 영동(永同)과 금산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일제 군경(軍警)과의 전투에도 참여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나 재판기록상으로는 민간에서 군자금을 조달한 사실만이 파악된다. 곧 1909년 5월 14일((음) 3월 25일) 밤 총 35정과 곤봉 등으로 무장한 동료 의병 50여 명과 함께 충북 영동군 양남면(陽南面) 필촌(筆村) 용산리(龍山里)에 거주하는 홍관서(洪寬西)에게 의병임을 밝히고 군자금으로 30원을 징발하였다. 5월 17일((음) 3월 28일)에는 금산군 부북면(富北面) 가마곡리(可馬谷里)의 육석여(陸石汝)에게 엽전 1백 30냥을, 5월 20일((음) 3월 30일)에는 부동면(富東面) 어재리(魚滓里)의 장재관(張在寬)에게 엽전 30냥을, 6월 22일((음) 5월 5일)에는 앞서와 같은 마을의 장사문(張士文)에게 엽전 1백냥을 군자금으로 징발하였다. 이후 1909년 말 일본군에 체포되어 오장(伍長, 하사에 해당) 다나카 구니쿠라(田中國藏)에게 취조를 받고, 1909년 12월 1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