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술
張在述1916. 5. 10 ~ 1985. 6.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사할린 강제징용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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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16년 5월 10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하상면(下廂面) 연암리(蓮岩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광녕(廣寧)이다. 가세가 기울어 부모와 함께 1922년경 홋카이도(北海道)로 건너갔다. 1924년 12월경 사할린(樺太) 모토도마리군(元泊郡) 시루토루마치(知取町)로 이사하였다. 1930년 9월경 시루토루심상소학교 고등과 1학년을 중퇴하고, 시루토루마치 소재 왕자(王子)제지주식회사 산림부의 사무원으로 취직하였다. 1934년 5월경 고학을 목적으로 도쿄(東京)로 건너갔다. 신문배달을 하면서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부속 야간중학교에 입학하여 다니다가 1937년 2월 신병으로 3학년을 중퇴하였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이 반드시 패망할 것이라 생각하고, ‘반전반협력조선인학생협회’란 비밀결사에 참여해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1942년 협화회(協和會), 학도병 징집 거부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을 피해 사할린으로 건너갔다. 1942년 『화태신문(樺太新聞)』에 익명으로 한국 징용 노무자의 차별 대우에 관한 글을 발표하였다가 같은 해 9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3년 6월 8일 사할린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사할린의 도요하라(豊原)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그 후 일제의 사상범예방구금법에 의해 삿포로(札幌) 나에호형무소에 이감되었다. 1945년 11월 삿포로형무소에서 풀려났다. 풀려난 이후 일본에 거주하며 1946년 순국열사 이봉창(李奉昌)·윤봉길(尹奉吉)·백정기(白貞基) 선생의 유골 봉환 사업에 진력하였다. 이후 사할린의 한국인 귀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저술로는 『옥문도(獄門島)』, 『일본제국한국병합침략화보사진사(日本帝國韓國倂合侵略畵報寫眞史)』, 『재일한국인 차별의 원점(在日韓國人の差別の原點)』 등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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