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성
張在星1914. 3. 3 ~ 1939. 6.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1)
관련 사건
- · 교원적색(敎員赤色)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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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1) 1914년 3월 3일 경상북도 선산군(善山郡) 선산면(善山面) 교동(校洞)에서 지주 장병희(張炳熙)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호는 원봉(園峰)이며, 이명은 한자가 다른 장재성(張在成)이다. 1929년 고향의 선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사립 중동학교를 졸업하였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야마구치현(山口縣)의 사립 다카미즈중학(高水中學)을 졸업하고, 1933년 3월 도쿄(東京)의 니혼(日本)대학 제1고등학원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인 1934년경부터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며 독립운동의 방편으로 사회주의사상을 받아들였다. 1936년 4월 니혼대학 법과에 진학하였다. 1936년 8월 하순경 여름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하여 선산면 완전동(完田洞) 중국요리점에서 선산보통학교 동기동창 임장수(林長壽)와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일제의 식민정책으로 조선민족은 억압과 착취를 당하고 있으므로 청년들은 민중의 선두에 서서 조선민족의 행복 옹호에 노력”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어 “조선민족은 문맹률이 높으니 우선 문학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계몽할 것”을 합의하고, 동지들을 규합하여 문학동인(文學同人)을 조직하고 항일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잡지를 발행하기로 하였다. 그해 항일시집(抗日詩集)인 『말하는 침묵(沈默)』을 창작, 발간하였다. 1937년 애국가요 「백의민족의 가요」, 「명사십리」를 작사해서 보급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같은 해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도쿄에서 동지 최원형(崔垣亨)과 함께 중일전쟁을 비판하고 한국민족의 궐기를 호소하는 지하 잡지 『민족이여 일어나라』를 발간하여 국내외 동지들에게 배포하였다. 1938년 시나리오 「홍주머니」(일명 아리랑)를 쓰고 영화제작을 모색하기 위해 고국의 영화감독 및 동지에게 우편으로 보낸 것이 적발되어 귀국 후 이른바 교원적색(敎員赤色)사건의 혐의자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9년 5월 1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939년 6월 25일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시집 『말하는 침묵』 등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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