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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進源

丁進源

1868. 2. 1 ~ 1943.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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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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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덕천(德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덕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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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68년 2월 1일 평안남도 덕천군(德川郡) 성양면(城陽面) 연당리(蓮塘里)에서 태어났다. 호는 연당(蓮堂)이며,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의암(義庵) 유인석(柳麟錫)의 제자로 일찍이 유학을 공부하였다. 1904년 2월 23일 한일의정서(韓日議政書) 체결로 대한제국의 자주권이 크게 손상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일제는 2개 사단 규모의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을 상시 주둔시켰다. 더불어 그해 6월 한일 간 진황처(陳荒處) 합동 개간 독점사업 계약 논의가 오가자, 유생들은 이를 경작·정리되지 않은 토지에 대한 일제의 침략 시도로 규정하여 규탄하였다. 당시 각기병(脚氣病)을 앓던 유인석은 자신이 직접 의병봉기에 나서는 대신, 국권회복을 목표로 한 거국적 의병운동을 위한 조직기반으로서 ‘계(契)’의 조직을 구상하였다. 이에 같은 해 (음)8월 21일 관서 지역의 문인(門人)과 사우(士友)들에게 이러한 구상을 구체화한 내용의 「여관서사우서(與關西士友書)」를 발송하고, 관서 지방 중 청천강(淸川江) 이남과 이북에 각각 도유사(都有司)를, 각 읍(邑)에 유사(有司)를 정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에 유림들은 각지에서 의병으로 분기하는 한편, 관서 지역 각 고을의 유학자들을 잇는 종유계(宗儒契)가 조직되었다. 청남도유사에는 현희봉(玄熙鳳), 청북도유사는 정항숙(鄭恒叔)이 선임되었으며, 평남·평북 각 군마다 종유계 간부가 임명되었다. 이때에 이르러 고향인 평남 덕천군의 종유계 간부가 되어 유생들을 이끄는 한편, 러일전쟁기 일제에 협력한 일진회(一進會)의 지역 조직원들과 교전을 벌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만주 지역에는 유생들을 중심으로 한 의병부대들이 대거 이주하였고, 이들을 기반으로 한 보약사(保約社)·향약계(鄕約契)·농무계(農務契)·포수단(砲手團) 등 한인 조직이 건설되었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4월 15일 만주 지린성(吉林省)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유림 및 의병계열 독립운동가 560여 명이 모여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조직하였다. 대한독립단은 복벽주의(復辟主義)를 표방하였으며, 도총재(都總裁)와 총단(總團)을 두었다. 설립 당시 도총재는 박장호(朴長浩), 부총재(副總裁)는 백삼규(白三圭), 총단장은 조맹선(趙孟善), 남만주제일사단 본부단총(本部團總)은 김창묵(金昌默), 본부대장(本部隊長)은 방사익(方士益)이 담당했는데, 이들은 모두 한학을 배운 유학자들이었고, 유인석의 문인들이 많았다. 이때에 이르러 국내에 머물면서, 평북 덕천군 지역 유림의 거두로 이름을 떨쳤다. 1919년 늦은 가을, 평북 덕천군 내에서 대한독립단 평남 영원(寧遠)·덕천(德川)·맹산(孟山) 지구 지하 조직인 호굴독립단(虎窟獨立團)의 조직책 박승엽(朴承燁)을 만나, 이종현(李宗鉉)과 함께 대한독립단 덕천지단(德川支團)을 구성하고, 총무에 취임하였다. 덕천지단은 그를 정점으로 덕천군 내의 유림을 중심으로 하여 애국세력을 망라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지단장 이윤실(李潤實), 부단장 정계록(丁繼綠), 재무감(財務監) 정붕익(丁鵬翼), 통신부장 서상억(徐尙億), 통신부원 이종현, 서기과장(書記課長) 김승문(金勝文)의 진용을 갖추었다. 이 조직을 바탕으로 하여 덕천 지역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독립단원을 모병하였다. 이후 1920년 8월 중순 덕천군 일하면(日下面)에서 진명단(盡命團)을 조직하였는데, 이는 같은 시기에 지역의 전단·격문·경고문에 등장한 진충단(盡忠團)·의열단(義烈團)·혈맹단(血盟團)과 함께 독립군 단체에 대한 일제 경찰의 정보망을 혼란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또한 1921년 3월 20일경 덕천군 풍덕면(豊德面) 덕주령(德周嶺) 및 일하면에서 덕천경찰서 소속 일제 경찰 4명을 척살하고 군자금을 획득하였으며, 평남 영원군 온창면(溫倉面) 사무소를 불태우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1921년 7월초 대한독립단 덕천지단 인사 20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같은 해 10월 26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22년 2월 2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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