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得烈
曺得1910. 11. 16 ~ 1961. 6.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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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0) 1910년 11월 16일 경기도 수원(水原)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조안득(曺安得)이다. 수원공립보통학교(水原公立普通學校) 4년 과정을 수료하였으며, 학창시절 성공회(聖公會) 신자로서 안드리아노라는 세례명도 받았다. 졸업 후에는 인쇄소에서 직공으로 근무하였으며, 수원노동조합 출판부에 가입하여 1930년 경에는 인쇄부장이 되기도 하였다. 이때 일제 경찰에서 ‘요주의 인물’로 감시하고 있던 임범진·이종화와 친분을 쌓았다. 1931년 2월에는 서울로 이사하여, 4월부터 고양군(현 공덕동) 용일양조장(龍一釀造場)에서 배달 일을 하였다. 이때 같은 직장의 구승회(具承會)·이금진(李金振)과 교류하며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고, 스스로가 처해 있는 경제적 어려움이 일제 식민지배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수뇌인 조선총독을 처단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이에 구승회·이금진·윤낙삼(尹樂三)·최영진(崔榮鎭)·인진명(印振明)·조아각 등 6명과 함께 우가키(宇垣) 총독과 조선총독부 고관들을 암살할 계획을 구상하였다. 우선 폭발물 제조를 위해 당시 중석광산의 화약취급주임 인진명으로부터 다이너마이트와 도화선을 넘겨받고 제조법을 익혔다. 1935년 11월 17일 경성역(京城驛, 현 서울역)에서 우가키에게 폭발물을 투척할 기회를 엿보았으나, 경계가 삼엄하여 1차 시도는 실패하였다. 이후 요양차 충남 온양(溫陽)에 갔던 우가키 총독이 12월 14일에 경성역에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남대문 세브란스병원 근처에서 폭발물 투척을 계획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두 번의 시도가 모두 실패한 후, 1936년 1월 1일 우가키 총독이 남산의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참배하리라 예상하고, 이때를 틈타 신궁 근처에 불을 질러 일제 경찰을 동요시키고, 그 사이 총독을 처단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계획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면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2월 28일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36년 5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폭발물 취체규칙’ 위반,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징역 10년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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