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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行敦

鄭行敦

1912. 8. 22 ~ 2003.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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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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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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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청년동지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2년 8월 22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왜관면(倭館面) 왜관리(倭館里)에서 아버지 정재문(鄭在文)과 어머니 최질라(崔秩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지원(芝園)이다. 첫째 형 정행국(鄭行國)은 독립운동가로 왜관청년회(倭館靑年會)와 동창학원(同昌學院)을 조직해 주로 청소년들에게 반일·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11월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 재학 중, 학교의 친일교사를 배척하고 항일정신을 고취하고자 동맹휴학을 주도하였다. 이에 재학생 수백 명이 함께 단식투쟁으로 항거하였다. 이 사건의 주도자로 지목되어 강제로 퇴학당하였다. 그 후 1932년 4월 고향인 왜관에서 같은 마을 출신인 이창기(李暢基)·이두석(李斗錫)·박몽득(朴夢得)과 함께 청년동지회(靑年同志會)를 조직하였다. 이 모임을 통해서 비밀결사 독서회인 성진회(惺進會)를 만들어 야학에서 한글강습을 하는 등의 농촌계몽운동과 항일활동을 하며 민족의식을 길러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1938년 2월 19일 이창기·이두석과 함께 붙잡혔다. 1939년 10월 25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이송되어 대구형무소에 구금되었다가, 1941년 3월 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면소(免訴)되어 풀려났다. 광복 이후에는 왜관 순심여자고등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다. 또한, 한센병 환자 복지시설을 건립하고, 명성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사업과 복지사업에 헌신하였다.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로서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정행돈 교육상’이 제정되기도 하였으며, 고향인 왜관에는 2016년 8월 정행돈기념관이 설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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