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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구

權寧九

1897. 8. 21 ~ 1976.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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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권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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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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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태을교(흠치교)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97년 8월 21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오보면(烏保面) 대부동(大夫洞, 현 영덕읍 대부리)에서 권태문(權泰文)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이명은 송본준길(松本峻吉)이다. 1920년 (음)5월 안동군(安東郡) 서후면(西後面) 교동(校洞)에 있는 빈집에서 권영기(權寧畿)·전명조(全命祚) 등과 함께 태을교(太乙敎)에 입교하여 12인조에 가맹하였다. 태을교는 강일순(姜一淳)이 창시한 증산교(甑山敎)의 별칭으로 각종 질병을 떨치고 후천개벽(後天開闢)을 기원한다는 의미로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바하’라고 주문을 외운다고 하여 태을교 혹은 훔치교(흠치교, 欽哆敎)라고 불렸다. 태을교는 교주 차경석(車京石) 아래 60방위를 두고 60방위는 각자 6인조를, 6인조는 각자 12인조를, 12인조는 각자 8인조를, 8인조는 각자 15인조를 차례대로 조직하여 지도하는 체계로 되어 있었다. 태을교의 개벽사상(開闢思想)이 식민 지배하 한국의 암울한 현실과 독립국의 수립이라는 정치적 인식과 연결되면서 조선총독부의 탄압을 받았다. 같은 해 (음)8월 영덕군 오보면 대부동 뒷산에서 김성술(金聖述)·권영도(權寧燾)·이우석(李雨錫)·유경찬(柳景燦)·남재정(南在晶) 등에게 입교 서약을 받고 자신의 하부 조직인 8인조를 완성하였다. 이때 태을교를 믿으면 병에 걸리지 않으며, 갑자년(甲子年) 혹은 정묘년(丁卯年)에 교주 차경석이 충남 계룡산에 도읍을 세우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한국은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나 독립하게 되며, 교도들은 자격에 따라 관직을 얻을 수 있다고 설파하였다. 이들로부터 독립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준비금 명목으로 치성비(致誠費) 65원을 징수하여 일부는 제사비로 충당하고 나머지 60원은 태을교 본부로 보냈다. 1921년 5월 1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는데 동일 죄목으로 1921년 2월 3일부터 5월 3일까지 영덕경찰서에서 경찰범처벌규칙 위반으로 구류형에 처해졌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면소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1938년 10월 10일 영덕어업조합(盈德漁業組合) 임시총회에서 감사로 선임되었다가 1940년 12월 17일 임기 만료로 퇴임하였다. 1943년 3월 다시 같은 조합 감사로 취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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