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鎭永
鄭鎭永1908. 5. 6 ~ 1982. 1. 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양산농민조합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2)
관련 사건
- · 양산농민조합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2) 1908년 5월 6일 경상남도 양산군(梁山郡) 양산면 남부리(南部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양산농민조합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양산농민조합은 1932년 2월 24일 양산 사회단체회관에서 제3회 농민조합 정기대회를 개최하고, 경작권 확립, 소작료 문제, 최저임금 제정 등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이때 소작료가 4할로 결의되려 하자 대회에 배치되어 있던 경찰관이 이를 제지하였다. 조직부장 이봉재(李鳳在)는 이를 항의하다가 양산경찰서에 연행되어 25일간의 구류처분을 받았으며, 뒤이어 조합 간부 신영업(申榮業) 외 17명이 검거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김장호(金章浩)와 함께 체포된 조합 간부들을 구출할 것을 계획하고, 1932년 3월 16일 오후 9시 30분경 김태근(金泰根)·최달수(崔達守)·최학윤(崔學潤)·최해금(崔海金) 등 3백여 명의 조합원들과 함께 조합 간부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양산경찰서를 습격하였다. 이처럼 농민운동이 대규모 경찰서 습격사건으로 발전되는 양상은 남부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었으며, 일제와 일본인 지주에 대한 농민들의 항쟁 항일운동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일제 경찰은 이들을 해산시키고자 공포를 쏘던 끝에 실탄을 발사하여 농민 윤복용(尹福用)이 사망하였다. 이에 조합원들은 양산협동조합 사무실로 우선 몸을 피한 후, 조합 간부들이 호송될 때에 급습하여 구출해온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일제 경찰이 사무실을 습격하여 조합원 1백여 명을 체포하였다. 취조 끝에 양산농민조합 사건의 주모자임이 밝혀져 붙잡혔다. 1932년 10월 1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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