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瑽柱
鄭瑽柱1908. 11. 19 ~ 1992. 7. 2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용산독서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농촌계몽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1908년 11월 19일 경상남도 사천군(泗川郡) 삼천포읍(三千浦邑) 이금리(梨琴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정종주(鄭琮柱)를 썼다. 1927년 3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4월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이듬해인 1929년 동맹휴교에 참여하였다가 퇴학당한 후 귀향하였다. 1929년 고향인 사천군 삼천포로 돌아온 후 그해 9월경 사회제도를 개혁할 목적으로 문갑이(文甲伊)·정성기(鄭聖基)·김학주(金鶴柱) 등과 함께 용산독서회(龍山讀書會)를 조직하였다. 여기서 위원장을 맡아 사회과학을 연구하며 삼천포 지역에서 야학을 열어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 독서회 활동을 통해 정철주(鄭鐵柱) 등 새로운 동지들을 포섭하였으며, 야학에서는 학생들에게 주로 사회주의 사상을 교육하며 민족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1931년 11월 삼천포공립보통학교 동맹휴교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용산독서회 활동이 드러나, 12월 13일에 관계자 10여 명이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함께 붙잡혀 1심에서 체형을 받고 항소하였다. 1932년 5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체포된 이후 석방될 때까지 약 4개월의 옥고를 겪었다. 이후 1934년에는 삼천포에서 혁명적 농민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농민운동그룹을 조직하였다. 같은 해 10월 초순부터 다시금 야학을 열고 매일 1시간 정도 10여 명의 농민자제를 모아 공부를 가르쳤다. 그러나 1938년 1월 4일부터 농민운동그룹 관련자 150여 명이 검거되는 대대적인 검거 열풍이 불었다. 농민운동 관련자들의 검거가 계속되는 가운데, 9월 16일 동지 12명과 함께 구속되었다.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 검사국에 송치되어 1939년 5월 4일 약 8개월의 예심을 마쳤다. 같은 해 8월 30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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