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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寅行

鄭寅行

1870. 2. 19 ~ 1931.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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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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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論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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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광복단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0) 1870년 2월 19일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두마면(豆磨面) 용연리(龍淵里)에서 태어났다. 1920년 10월 광복단(光復團) 충청도지단에 합류한 후, 군자금 모집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광복단은 1920년 박성빈(朴聖彬)이 간도에서 군자금 모집과 일본인 고위관리의 암살 처단 등을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박성빈은 김국경(金國景)을 전라·충청·경상 지역 광복단 담당자로 임명한 후, 국내로 잠입시켜 군자금과 독립군 모집 활동을 펼치도록 하였다. 김국경은 박재옥(朴在玉)을 충남지부장으로 임명하였고, 단원들과 함께 일본인 관리를 암살하기 위해 잠복해 있었다. 그러다가 1920년 10월 9일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 공주지역을 순시할 예정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처단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동지를 규합한 후 무기를 구입하는 등 준비하였지만, 구입한 무기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정무총감 처단에 실패하고 같은 해 10월 이후 박재옥과 함께 적극적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위해 충청지단에서 활동했던 윤상긍(尹相肯)·이승조(李承兆)·강영희(姜榮羲) 등과 함께 “우리 민족은 적의 노예와 같은 자에 종속함은 참기 어려운 치욕이고, 치욕을 면하기 위해서는 조국의 독립을 기도함이 급선무이다. 하지만 독립이 되자면 자금이 충실하여야 될 터이니 유지에 대하여 모집하는 바이다”라는 통고문을 충청도 지역 부호들에게 보내며 군자금 모집 활동에 힘썼다. 그 결과 논산군 성동면(城東面)에 거주하던 조동시(趙東始)로부터 560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후 서울로 가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견원과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면서 그해 11월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21년 5월 2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공갈죄, 살인예비죄 등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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