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용
鄭南用1896. 11. 21 ~ 1921. 4. 1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민족대동단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관련 사건
- · 의친왕 이강공 해외망명계획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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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1963) 1896년 11월 21일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현내면(縣內面) 철통리에서 아버지 정승교(鄭昇敎)와 어머니 윤씨의 4남으로 태어났다. 판결문에 1920년 당시 나이가 25세로 기록되어 있다. 이명은 정필성(鄭必成)·정일(鄭鎰)·홍우식(洪宇植)·정의남(鄭義南)이다. 필성이란 별명은 ‘반드시 독립을 달성한다’는 의지를 담아 붙인 것이다. 1906년 11세 때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金剛山)의 건봉사(乾鳳寺)로 들어가 승려 수업을 받았고, 1910년 전후에는 고향에서 소학교인 봉명학교를 다녔다. 그 뒤로 서울로 올라가 휘문의숙을 다니다가, 부모와 맏형이 세상을 뜨면서 1917년 학교를 중퇴하였다. 이후 만해 한용운(韓龍雲)이 주임을 맡고 있던 불교학교 중앙학림(中央學林)을 다니면서 이종욱·신상완(申尙玩)·송세호 등과 교유하였다. 이들과 함께 한용운의 영향을 받으며 민족독립에 대한 의식을 함양해 나갔다. 또 나창헌 등과는 하숙을 같이 하면서 동지적 관계를 맺어 나갔다. 1917년 가을 고향에서 보내온 학비 30원을 가지고 중국에 망명한 한인들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북간도의 구룡촌(九龍村)·남양평(南陽坪)·명동촌(明東村) 등을 돌아보고, 1918년 초에 돌아왔다. 명동촌에서는 잠깐이나마 학교 교사로 지내면서 독립운동의 방도를 모색하였다. 1919년 고향에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자 곧 서울로 올라와 비밀단체인 조선민족대동단에 가입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주도한 조선민족대동단은 독립 달성을 위해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표방하며 서울에서 결성한 독립운동단체로, 사회 각층의 인사들을 단원으로 규합해 전국 규모의 조직을 계획하고 주로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대동단의 조직 구성은 총재 김가진(金嘉鎭), 외교 신규식(申奎植), 인사 전협(全協), 문서 편집 최익환(崔益煥)·정필성(鄭必成), 배달 책임 권헌복(權憲復), 자금책 권태석(權泰錫) 등으로 이뤄졌다.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활동하던 신규식의 참가는 사후 승낙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9년 5월 최익환이 붙잡힌 이후 후임으로 선전활동을 주관하면서 동단 발행의 선언서와 임시규칙 등 각종 문서의 인쇄와 배포 등의 책임을 맡았다. 이때 전협은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택을 3,000원에 팔아 인쇄소 구입 자금으로 충당하였다. 그리하여 같은 해 7월 『대동신보(大同新報)』 10,000매를 인쇄해 전국 각처에 발송할 수 있었다. 당시 대동단은 사회 각층 중 진신(縉紳)·유림(儒林)·상공(商工)·청년(靑年) 등 4개 단(團)을 중심으로 단원 규합에 나섰는데, 그 가운데 주로 청년단의 조직을 주관하였다. 그리하여 송세호(宋世浩)·나창헌(羅昌憲) 등을 가입시키는 등 조직 확대에 많은 힘을 쏟았다. 최익환 등의 체포로 조직의 일부가 노출되고 기관지 『대동신보』 등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일제 경찰은 포위망을 좁혀왔다. 이같은 상황에서 전협과 함께 대동단 본부를 중국 상하이(上海)로 이전할 것을 계획하고, 제1단계로 총재 김가진을 10월 10일에 먼저 상하이로 망명케 하였다. 이어서 의친왕(義親王)을 동단의 수령으로 추대하고 상하이 망명을 추진하였다. 11월 9일 이을규(李乙奎)와 함께 의친왕을 수행하여 서울을 출발해 중국 안둥(安東, 현 단둥(丹東))까지 갔으나, 이 사실을 탐지한 일제 경찰의 추격을 받아 11월 11일 안둥역에서 의친왕과 함께 붙잡혔다. 이로써 대동단 본부의 상하이 이전 계획이 무산되었으며, 조직이 파괴당하였다.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범처벌령 위반, 출판법 위반, 보안법 위반, 사기죄로 징역 5년(미결구류일수 중 20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폐병을 얻어, 1921년 4월 18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장례식은 그해 5월 17일 서울 연희동의 봉원사에서 건봉사 주지이자 스승인 정인목, 친형 정빈용을 비롯해 불교청년회 회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화장식으로 거행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장석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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