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현
全泰賢1922. 7. 28 ~ 2005. 4.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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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7) 1922년 7월 28일 황해도 옹진군(甕津郡) 서면(西面) 읍저리(邑底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전태현(全泰鉉)이고, 일제 말기에는 평야태현(平野泰鉉·平野泰賢)이라는 창씨명을 쓰기도 하였다. 활동 당시에는 경성부 현저(峴底)에 거주하였다. 서울에서 동향 출신 중등학교 학생들과 교류하며 독립운동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1940년 이종호(李鍾浩)·박내수(朴來洙) 등과 주기적으로 모여 중일전쟁의 전세를 논하며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을 확신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였다. 현재 정세상 중국이 불리한 형국이지만, 향후 소련군이 중국군을 원조하며 참전하게 되면 곧 일본이 패전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이에 가담하기로 결의하였다. 아울러 일반 대중에게 항일의식과 민족사상을 고취시킬 방도를 모색해갔다. 같은 해 9월 서울 사직공원 앞에 있는 선전문 게시판에 ‘대한독립만세’라는 대자보를 붙이는 등 일본 제국주의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독립의식을 확산시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주일 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으며 고초를 겪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이 일로 1942년 2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육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중 20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42년 8월 4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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