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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採雨

採雨

1865 ~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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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採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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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保寧)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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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군정사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충청남도 보령군(保寧郡) 남포면(藍浦面) 월전리(月田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20년 당시 나이가 57세이며, 주소지는 경성부 효자동(孝子洞)으로 기록되어 있다. 호는 호은(湖隱)이다. 1919년 7월 중국 지린성(吉林省)에 있는 군정사(軍政司)에서 군자금 모집을 목적으로 파견한 김영순(金永淳)을 만나,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에 주력하였다. 이들은 군정사 독판(軍政司督辦) 유동열(柳東說) 명의의 군령(軍令)을 작성하여, 약 30장을 인쇄하였다. 유동열의 군령은 “길림의 군정사에서는 러시아령과 서북간도(西北間島)에서 청년을 소집하여 편성한 군대가 이미 20만에 달했는데도 군용금이 부족하여 일의 차질이 많음으로 아무개를 조선에 특파하여 힘을 다하여 기부하고 나아가 연납하는 자는 공로를 기록하고 거절하여 납부하지 않는 자는 군법으로 다스린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을 이용하여 민심을 움직여 독립을 위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각지의 부호들을 중심으로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하였다. 이시우(李時雨)·이증로(李曾魯)에게 이 문서를 주어 경상남도 방면으로 파견하기로 하고, 권총 2정을 이시우에게 교부하였다. 이증로가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황룡면(黃龍面)에서 붙잡히면서 조직이 드러나, 결국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2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사문서위조행사, 강도예비, 정치범처벌령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4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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