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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震雨

震雨

1864. 2. 16 ~ 1925.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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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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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의령(宜寧)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의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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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1) 1864년 2월 16일 경상남도 의령군(宜寧郡) 정곡면(正谷面) 중교리(中橋里)에서 태어났다. 자료의 한계로 집안 내력과 성장 과정 등은 알 수 없다. 일제는 식민지적 토지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1910년부터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였다. 이는 일본자본의 토지 점유에 적합한 토지소유의 증명제도를 확립하고, 지세 수입의 증대를 통해 식민통치를 위한 조세수입 체제의 확립을 목적으로 한 대규모 수탈 정책의 일환이었다.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동의 토지는 지역민들과 인근 4개 리(里)의 주민들이 개간을 끝내고 지세를 납부하며 경작하던 민유지(民有地)였다. 그러나 일제는 이러한 관행을 무시하고 국유지로 편입시켜 조선농업주식회사(朝鮮農業株式會社)에 불하하도록 했다. 지역민들은 이러한 처사에 반발하며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저지하려 했으나 조사사업은 강행되었다. 이에 당시 정곡면장 남상순(南相舜)을 비롯한 전중진(田中鎭)·남병우(南炳祐) 등과 함께 일제의 토지 측량을 저지할 계획을 수립했다. 토지 측량이 실시되면 국유지로 편입되고 조선농업주식회사의 관할로 이관되어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할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1914년 8월 26일과 27일 양일간 일제 관헌과 경찰의 입회하에 진행된 토지 측량에 700여 명의 지역민들과 함께 반대 행동을 전개하였다. 토지 측량은 동민들의 권리를 무시한 조치이니 허용할 수 없다고 취지를 설명하고 안내원 박기양(朴璂陽)과 충돌하는 등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이 일로 인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4년 10월 12일 1심에서 이른바 소요죄 등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1915년 1월 2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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