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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琮漢

琮漢

188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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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琮漢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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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내항일

지도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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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구국단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2) 서울 간동(諫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2년 당시 39세이므로 1883년생으로 추정된다. 1920년 대한독립구국단(大韓獨立救國團)에 참여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제공할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독립운동 문서를 인쇄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0년 (음)11월 정인호(鄭寅琥)의 권유를 받아 김두형(金斗衡)·서병두(徐丙斗) 등과 함께 대한독립구국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대한독립구국단은 1919년 3월 하순경 서울 인의동(仁義洞) 정인호의 집과 장두철(張斗徹)의 집에서 독립을 목적으로 장두철을 상하이로 파견하여 연락을 담당하게 하고, 국내에서 주로 운동자금을 모집하여 해외 독립운동에 힘을 보태고자 조직되었다. 1920년 (음)11월 15일경 정인호와 함께 임시정부 재무부장(財務部長)과 재무총장(財務總長)의 인장을 만들어 서병두 등과 정인호의 자택에서 활판 기계를 사용하여 “조선 독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선 인민은 의무로 군자금을 제공해야 한다”는 뜻을 기재하고, 만약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위해를 가할 것을 암시한 「군자금 납입명령서」라는 제목의 문서 수십 장을 제작하였다. 또한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상하이 임시정부 「국민의회의원선임장(國民議會議員選任狀)」수십 장을 인쇄하였다. 이상의 문서를 정인호·김두형 등이 조선 내 부호들에게 반포하도록 도왔다. 이처럼 활동하던 중 단원들과 함께 1921년 3월 8일 종로경찰서에 붙잡혔다. 1922년 2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미결구류일수 중 9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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