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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冕

鍾冕

1867. 6. 11 ~ 1932.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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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鍾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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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永同)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영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관동창 의병부대
  • · 이인영 의병부대
  • · 대한독립의군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6) 1867년 6월 11일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황간면(黃澗面) 금계리(金溪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종묵(李鍾默)·이중묵(李重默)을 사용하였다. 일제 강점 이전부터 국권회복운동의 일환으로 의병부대에 가담하였으며,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에 참여하여 동지 규합과 군자금 조달에 힘썼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포함된 을미개혁이 실시되자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이때 관동창(關東倡)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1907년에는 광무황제(고종)의 강제 퇴위와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에 반대하여 의병이 일어나자 이인영(李麟榮)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최익현(崔益鉉)의 지휘 아래 의병 활동을 한 임병찬(林炳瓚)과 이용순(李溶淳)·전용규(田鎔圭) 등 유생 및 의병은 고종의 밀칙을 받아 일본 내각 총리대신과 조선 총독 및 주요 관리에게 「국권반환 요구서」를 보내어 한국의 식민지화를 비판하고 대규모 의병전쟁을 준비하였다. 국권회복의 여론을 일으키려는 목적에서 1912년 대한독립의군부가 조직되었고, 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14년 5월 「국권반환 요구서」 발송을 목표로 같은 해 4월경 단원들을 규합하고 부호들에게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모집하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5년 8월경부터 같은 해 12월경까지 박종식(朴宗湜)·이춘산(李春山)·안성렬(安聖烈) 등과 함께 “구한국의 국권회복을 도모한다”는 취지를 알리고 각지를 다니면서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연설을 하였으며, 영동군 황간면 고향 자택과 경남 밀양군(密陽郡) 하동면(河東面)의 김병두(金炳斗)의 자택에서 국권회복을 위한 연설을 하여 치안을 방해하였다는 이유로 일제경찰에 붙잡혔다. 이 일로 1916년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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