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正春
正春1889. 10. 8 ~ 1955. 3.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옥구농민조합 서수지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3)
관련 사건
- · 이엽사농장 소작쟁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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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3) 1889년 10월 8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서수면(瑞穗面) 용전리(龍田里)에서 태어났다. 1927년 말 옥구농민조합(沃溝農民組合) 서수지회(瑞穗支會)에 참여하여 소작쟁의를 전개하였다. 1927년 10월 2일 옥구군 서수면에서는 지주의 횡포를 막고 소작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옥구농민조합 서수지회가 결성되었다. 이때 장태성(張台成)·박상호(朴相浩)·김영준(金寧俊)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당시 옥구농민조합 서수지회 조합원의 수는 약 200명이 되었다. 당시 서수면 서수리 소재 주식회사 이엽사농장(二葉社農場)에서는 전북 일대에 많은 토지를 가지고 도조(賭租)를 7할 이상으로 설정하여 소작인에게 가혹한 소작 조건을 요구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옥구농민조합 간부인 장태성과 김행규(金杏奎) 등은 농장의 일본인 지주 제등신일(齊藤信一)에게 45%로 감액해 줄 것을 요구하고 농장 측과 교섭하였으나 끝내 결렬되었다. 조합원들과 소작인들은 결속하여 도조불납통지를 농장 측에 발송하고 쟁의를 일으켰다. 이 일로 1927년 11월 25일 장태성이 일본인 농장 지배인을 협박하였다는 혐의로 임피역전(臨陂驛前) 주재소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소식을 듣고 조합원 수백 명과 함께 11월 25일 저녁 9시경 임피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건물을 파괴하고 일제 경찰을 제압하여 장태성을 구출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서수주재소에 옥구농민조합 간부였던 박상호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밤 10시경 동료들과 박상호를 구출하였다. 그러나 이 일로 조합 간부와 농민 80여 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8년 2월 29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이른바 구금자 탈취 및 소요죄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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