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식
姜在植1919. 2. 6 ~ 1991. 2.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 · 토교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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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1) 1919년 2월 6일 함경남도 원산(元山)에서 태어났다. 1944년 9월, 일본군에 강제징병되어 중국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 지구에 배치되어 복무하였다. 1944년 11월부터 일본군은 중국의 전시 수도 충칭(重慶)을 점령하려고 침공 작전을 계획하였으며, 이에 대비한 중국군 역시 대규모의 병력을 증강하고 있었다. 이렇게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많은 한인 사병이 부대를 탈출하고 있었다. 1945년 2월, 일본을 위한 무의미한 죽음보다는 조국에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고 부대를 탈출하였다. 탈출하는 데는 이용상(李容相)의 도움이 컸다. 이용상 역시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창사 남방 지구에 배속되었다가 1944년 5월 탈출하여 중국 중앙군 헝산(衡山) 유격사령부에서 특수공작 임무를 맡아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에 일본군 내의 한인 사병들의 탈출을 도와 광복군에 입대토록 하였던 것이다. 이용상의 도움으로 일본군 부대를 탈출한 한인 사병은 황의선(黃義善)·김광수(金光洙) 등이 있다. 1945년 4월경, 죽음을 무릅쓰고 행군을 계속해 한국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는 충칭에 도착하였다. 광복군 총사령부에 도착한 뒤, 5월에 보충대인 토교대(土橋隊)에 입대하였다. 토교대는 충칭 시내에서 약 30리 떨어진 양자강 상류의 토교(土橋) 에 있어서 토교대라고 불렀다. 토교대는 충칭을 본거지로 활동하던 광복군 총사령부의 보충대였다. 자대 배치 전 대기하던 보충대인 토교대는 충칭 인근의 토교라는 마을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모두 3기로 운영되었는데, 제3기 출신이었다. 당시 3기는 1945년 5월경 중국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된 한인 사병과 토교에 수용한 계기로 편성되었다. 이후 약 3개월의 교육 훈련 과정을 마치고, 광복군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 광복을 토교대에서 맞이하였으며, 광복군 제1지대에 편입되어 이들과 함께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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