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允熙
鄭允熙1926. 11. 18 ~ 1944. 12.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26년 11월 18일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 덕곡면(德谷面) 일성리(一聖里)에서 태어났다. 1943년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소속되어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중일전쟁(中日戰爭)이 장기전에 들어가자 일제는 침략전쟁을 위한 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한인을 동원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1938년 2월 ‘육군특별지원병령(陸軍特別支援兵令)’을 통해 지원병제도를 실시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뒤에는 1943년 7월 ‘해군특별지원병령(海軍特別支援兵令)’을 공포하였다. 아울러 전문학교 학생들에 대한 ‘학도지원병(學徒志願兵)’ 강제도 시작되면서 1943년까지 23,000명이 학도지원병이라는 이름으로 동원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44년 4월 징병제(徵兵制)까지 실시되면서 1945년 8월까지 육군과 해군을 합하여 19만여 명의 한인 청년들이 전선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때 일본군에 징집되어 중국 전선에 동원되었으나 탈출하여 1943년 12월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광복군이 된 이후에는 제2지대 소속으로 산시성(山西省) 루안(潞安)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광복군 2지대는 1942년 5월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가 제1지대로 편입되면서 기존의 1·2·5지대 등 3개 지대를 통합하여 편성되었다. 제2지대장에는 총사령부 참모장인 이범석(李範奭)이, 참모인 이복원(李復源)이 부지대장에 임명되었다. 이밖에는 총사령부와 제1지대 간부들이 상급간부로, 제5지대 대원들이 하급간부가 되었다. 제2지대는 지대장 이범석을 중심으로 하여 총무조와 정훈조로 구성된 지대본부, 그리고 그 산하에 3개 구대가 설치되었고, 각 구대는 3개 분대로 이루어졌다. 제2지대는 산시성(陜西省) 시안(西安)에 근거지를 두었다. 시안은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화베이(華北)지역과 최전선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었다. 당시 화베이지역에는 20여 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인들이 이주해있어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선전(宣傳)과 초모(招募)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일본군 내의 한인사병(韓人士兵)과 일본군 점령 지구에 있는 한인 청년들을 포섭하여 광복군으로 편입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1945년 5월에는 제2지대 대원 250여 명 가운데 80명이 초모공작을 나갔다고 할 정도로 제2지대는 초모활동에 주력하고 있었다. 이러한 제2지대의 초모활동 결과 3년여 동안 100명의 대원이 광복군으로 충원될 수 있었다. 이때 제2지대 대원으로서 활발한 초모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정기주(鄭起周)와 함께 베이징(北京) 근처에서 일제 헌병대에 붙잡혀 김천성(金天成)·이해순(李海淳)·백정현(白正鉉) 등과 함께 고초를 겪다가 1944년 12월 13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기성⋮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