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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在玉

鄭在玉

1893. 2. 21 ~ 1944. 9. 20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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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河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하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하동군 청암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3년 2월 21일 경상남도 하동군(河東君) 청암면(靑岩面) 평촌리(坪村里)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한학을 배웠다고 하며, 부인 최선이 사이에서 4남 2녀를 두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 등 각처에서 촉발한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경남 하동군 청암면 일대에도 만세운동 소식이 전파되었다. 이윽고 4월 7일 청암면 평촌리 정신교(鄭信敎) 집에서 김기범(金淇範)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할 것을 결의하였다. 다음날인 4월 8일을 거사일로 상정하고 만세시위를 위한 준비를 진행하였다. 이때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서를 옮겨 쓰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4월 7일 밤 같은 동네의 김종을 집에 태극기를 세워두는 한편 그곳에 모인 30여 명의 마을 사람들에게 독립만세시위의 취지를 설명하고 다음날 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8일 오후 8시경 청암면 평촌리 광장에서 김기범의 선창으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50~6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였으며, 청암면장에게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강요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시위 진압을 위해 출동한 일제 군경에 의해서 청암면 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붙잡혔다. 1919년 5월 1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그해 6월 2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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