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在先
鄭在先1898. 4. 29 ~ 1971. 4.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1919년 영일군 청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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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4) 1898년 4월 29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청하면(淸河面) 미남리(美南里, 현 포항시 북구 청하면 미남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정재선(鄭再先)을 썼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경북 영일에도 전파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후인 3월 22일 영일군 청하면(淸河面) 덕성리(德城里)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청하면의 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은 송라면(松羅面) 대전리(大田里) 예수교 교회 장로파 영수(領袖)인 윤영복(尹永福)이었다. 윤영복은 신문을 통하여 서울에서 만세운동 발생과 전국적인 확산을 알게 되면서 영일군에서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윤영복은 3월 18일 청하면 덕성리 예수교 교회 영수 오용간(吳用干)과 친족 형인 예수교 교사 윤영만(尹永滿)을 찾아가 만세시위의 계획을 알렸다. 윤영복의 제의에 오용간과 윤영만도 동의하면서 만세시위는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가게 되었다. 거사 날짜를 덕성리 장날인 3월 22일로 정하고 만세시위를 함께할 인사들을 규합하기 시작하였다. 윤영복 등의 제의와 권유에 교회신도 이준석(李俊石)·안천종(安千鍾)·안상종(安常鍾)·이준업(李俊業)·윤도치(尹道致)·이윤선(李允先)·이상호(李相浩)·김만수(金萬守)·김유곤(金有坤)·정백용(鄭伯用) 등이 만세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윤영복과 오용간은 자신들의 집에서 큰 태극기 1기와 작은 태극기 20기를 제작하여 만세시위에 쓰일 태극기를 스스로 제작하였다. 3월 22일 거사 당일에 윤영복과 오용간은 교회 신도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덕성리 장터에 모이기로 하였다. 오후 1시경 윤영복이 큰 태극기를 흔들고, 이어서 오용간도 작은 태극기를 품속에서 꺼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두 사람의 만세 선창에 장터 곳곳에 있던 신도들도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만세운동이 전개되던 당시에 현장에 있으며 만세운동의 뜻에 찬동하여 적극 참여하였다. 호응에 힘입은 군중은 장터를 벗어나 덕성리 거리로 시위를 확대하였다. 이준석이 선두가 되어 군중을 이끌었으며 많은 사람이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만세시위 소식에 일제 경찰이 즉시 출동하였고 시위를 주도한 인사들을 포함하여 모두 23명이 체포되었으며 군중은 해산되었다. 이때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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