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栽模
鄭栽模1897. 1. 8 ~ 1950. 10.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남해군 남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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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7년 1월 8일 경상남도 남해군(南海郡) 설천면(雪川面) 비란리(非鸞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정재모(鄭裁模)를 썼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이 경남 남해군으로 전파된 것은 3월 20일이었다. 이날 남해면 읍내 시장에서 만세시위가 최초로 거행되었다. 이후 4월 4일 남해군 읍내 시장에서 재개되었다. 이때 전개된 만세시위는 전날인 3일 설천면 남양리(南陽里)의 만세시위가 계속된 것이었다. 하동군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져온 이예모가 주도하였는데 이날의 만세시위를 계획할 때 참가하여 적극적으로 시위를 준비하였다. 3일 남양리 만세시위는 시위대가 남해면 읍내 중심지로 이동하다가 고현면(古縣面)에 이르렀을 때 중단되었다. 이는 고현면 면장 김치관(金致寬)이 읍내 경찰주재소에 시위 사실을 밀고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예모 등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상의하였고, 장날인 다음날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읍내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재개하기로 결정하였다. 4월 4일 남해면 읍내 시장에는 전날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인근 지역의 많은 주민이 모여 있었다. 오후 2시경부터 만세시위가 시작되자, 장대에 높이 단 큰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위대의 선두에서 목청껏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군청, 경찰관주재소, 금융조합사무실, 우편국, 공립보통학교 등에 시위대를 이끌고 들어가 유리창과 집기 및 기물을 파손하고 직원들에게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강요하였다. 특히 군수에게 군청에 모여 있는 시위대 앞에서 만세를 외치도록 하였다. 시위 진압을 위해 파견된 사천(泗川)경찰서의 증원 병력이 현장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시위대가 해산된 뒤 일제 경찰들은 대대적인 주모자 검거에 나섰다. 사천경찰서 증원 병력과 일본군 헌병대 10여 명도 파견되어 검거 작전을 도왔다. 결국 정순조·이예모·윤주순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8월 7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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