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在南
鄭在南1896. 11. 27 ~ 1946. 10.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1919년 함평군 월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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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96년 11월 27일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월야면(月也面) 월계리(月溪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자(字)는 동환(東煥), 호(號)는 성남(城南)이다. 1919년 1월 고종이 승하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인행·윤백언(尹白彦)·정기연(鄭琦衍)은 함께 상경하였다가 때마침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귀향 후 1919년 4월 8일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월야면 만세운동은 함평 만세시위의 일환이었으며,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경험하고 귀향한 이인행(李仁行)이 이윤상(李潤相)과 접촉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인행은 정기연을 비롯해 조사현(曺士鉉)·김용언(金用彦)·김준령(金俊玲) 등과 회동하여, 4월 26일을 거사 날짜로 정하고, 국민대회 취지서를 비밀리에 살포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4월 26일 시위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이인행은 함평 군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위를 독려했는데, 여기에 해보면(海保面) 금덕리(琴德里)에 살던 이윤상도 함께 하였다. 이윤상은 장효섭(張孝燮)·김기택(金箕澤)·정용섭(鄭龍燮) 등과 함께 4월 8일에 시위운동을 일으키자는 결론을 내렸다. 시위 당일 김기택·정용섭과 함께 수많은 인파를 이끌고 만세 함성을 지르며 행진하였다. 태극기와 선언서를 나눠 받은 군중도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호응하였다. 일제 경찰은 즉각 출동하여 시위대를 강력 진압하여 수많은 부상자가 나왔다. 이때 붙잡혀 1919년 5월 20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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