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寅冕
鄭寅冕1876. 8. 29 ~ 1924. 11.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1919년 청양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76년 8월 29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정산면(定山面) 역촌리(驛村里)의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5~6일 청양군 정산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정산면에서는 백곡리(白谷里)의 홍범섭(洪梵燮)·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홍범섭 등은 정산시장 장날인 1919년 4월 5일 만세시위를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주변의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하여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홍범섭 등은 거사일인 4월 5일 오후 3시경부터 정산시장에 나와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하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홍범섭 등에게 미리 만세시위에 대한 연락을 받고, 취지에 동의하여 정산시장으로 나와 시위대열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일제는 헌병들을 즉각 출동시켜 만세시위의 해산 명령과 함께 시위를 주도한 30여 명을 청양헌병분견소로 강제 연행하였다. 일제 헌병이 만세시위자들을 강압적으로 연행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한 주민들이 속속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 권흥규(權興圭)의 지휘에 따라 7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헌병분견소로 달려가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권흥규가 일제 헌병의 발포로 사망하면서 이날의 시위는 해산되었다. 다음날인 6일 아침 전날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헌병주재소로 갔다. 연락을 받고 온 권흥규의 친인척들과 함께 시신을 인수하여 운구에 참여하였다. 목면(木面) 안심리(安心里)로 향하는 운구행렬이 지나는 길목마다 많은 주민이 행렬에 합류하여 1천여 명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운구행렬이 지곡리(池谷里)를 지날 즈음부터 ‘조선독립만세’가 연창되면서 운구행렬 자체가 시위대로 전환되었다. 이에 일제는 정산·공주 지역의 헌병을 급파하였다. 일제 헌병들은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하며 이동하는 권흥규의 운구행렬을 향해 무차별로 발포하여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이날의 운구시위 이후 일제 헌병의 참여자에 대한 조사, 색출과정에서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되었다. 1919년 4월 24일의 즉결심판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이 인정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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