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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仁瑛

鄭仁瑛

1889. 1. 24 ~ 1940.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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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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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靈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영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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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6)

관련 사건

  • · 1919년 영광군 영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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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6) 1889년 1월 24일 전라남도 영광군(靈光郡) 영광면(靈光面) 도동리(道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4~15일 영광군 영광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영광군 만세시위의 출발은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한 영광군 출신 유학생 조철현(曺喆鉉)과 유일(柳一)에서 비롯되었다. 조철현 등은 영광보통학교 교사 이병영(李炳英) 등 영광군 내 인사들과 접촉하였다. 이 당시 영광 광흥학교를 졸업하고, 영광면내 노동조합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병영·박태엽(朴泰燁) 등을 만나 영광에서도 만세시위를 독자적으로 일으킬 것을 의논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서울에서 내려온 조철현·유일 등의 학생과,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고 영광에 돌아온 이좌근(李佐根) 등과도 접촉하여 연대 시위를 계획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영광보통학교 비롯하여, 영광군민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대규모의 만세시위가 영광시장을 비롯한 영광면 전역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3월 14일 정오 영광면 시장에서 유일의 선언문 낭독과 조철현의 국내 정세 설명에 뒤이어 시위대 앞에서 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영광면 만세시위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4일 시위에 참여한 인물 중 경찰에 다수 붙잡혔으나, 이때 붙잡히지 않고 피신하여 다음날의 시위를 도모하였다. 3월 15일 아침 영광면 남천리(南川里)에서 박정환(朴靖煥)이 운영하는 직포공장에서 김은환(金溵煥)·조희방(曺喜芳)·박정순(朴正淳) 등과 다시 만나 제2차 영광면 시위를 계획하였다. 시위에서 사용할 태극기 수십 개를 제작하였고, 당일 오후 1시 직포공장 앞에서 시위 군중에게 배포하여 다시금 만세시위를 고창하였다. 시위대는 남천리를 출발하여 도동리·백학리(白鶴里)·무허리(武虛里)를 거쳐 영광경찰서에서 도착하여, 전날 붙잡힌 인물들을 구하기 위하여 경찰서 내로 진입을 시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군중의 선두에 서서 솔선하여 만세를 부르며 군중을 이끌다가 경찰과 충돌하여 붙잡혔다. 1919년 5월 6일 열린 제1심에서 2년 전인 1917년 정동호(鄭東浩)라는 이름으로 사문서 위조행사 죄로 징역 5월에 처해져 당시 형이 집행된 점과, 1919년 3월 영광읍내에서의 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한 점이 인정되어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8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3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에는 『동아일보』 영광지국 총무 겸 기자로도 활동하였고, 노농우애회 대표를 역임하면서 조선노농총맹 발기회 등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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