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永祚
鄭永祚1903. 7. 23 ~ 1924. 4. 2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함평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903년 7월 23일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학교면(鶴橋面) 죽정리(竹亭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된 만세운동은 해를 넘겨 1920년에도 전국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전개되었다. 전남 함평군에서는 만세운동 원년인 1919년 4월 26일로 대대적인 만세운동이 예정되었으나 일제 경찰에 사전에 발각되면서 좌절되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이듬해인 1920년 3월 26일에 만세운동 1주년을 맞이하여 전남 함평에서 재차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만세운동의 취지에 동감하여 군중들과 함께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당시 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주도하였던 조사현(曺士鉉)·정기연(鄭琦衍) 등은 만세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전국적인 움직임에 발맞춰 재차 만세시위를 일으키고자 하였다. 조사현 등은 뜻을 함께 한 동지들과 함께 1920년 3월 19일 전남 함평고등공립보통학교 기숙사에 모여 거사를 감행하기로 결의하였다. 졸업식과 장날이 열리는 3월 26일로 날짜가 정해지자, 윤치영(尹致榮)·김준령(金俊玲)·모순기(牟順基) 등과 함께 각 면에 연락을 담당할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학생이었던 김용언(金用彦)·윤태완(尹泰完)·이행록(李行錄) 등은 학생들을 맡고, 조사현·김재문(金在文)은 일반인을 맡아 시위를 준비하였다. 시위에 필요한 태극기도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최봉길(崔奉吉)·모순기의 집 그리고 기숙사에서 21일부터 23일에 걸쳐 제작하였다.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3월 26일 졸업식을 마친 학생들을 이끌고 장터로 나아가 수백 명의 인파와 합류하였다. 이윽고 태극기가 휘날리고 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으며 시위대는 시가지를 향해 행진하였다. 그러나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이 강경 진압에 돌입하자 1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20여 명의 인사가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붙잡혔다. 장터 시위의 영향은 그날 저녁 기산(箕山) 시위를 비롯하여 학교면·손불면(孫佛面)·엄다면(嚴多面)·월야면(月也面) 등 군내 각지의 시위로 파급되었다. 1920년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다가 1921년 1월 31일에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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