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信燮
丁信燮1891. 4. 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무안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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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1년 4월 7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외읍면(外邑面, 현 무안읍) 성남리(城南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0일 무안군 외읍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무안군 외읍면 만세운동은 이 일대의 청년 유지인 정순홍(丁淳紅)과 김순기(金順淇) 등의 주도하에 준비되었다. 정순홍 등은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던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데 이어, 3월 18일 인근 지역인 장산면(長山面) 도창리(道昌里) 일대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외읍면 일대에서 만세 운동을 계획하기로 결심하였다. 3월 19일 밤 김순기의 집에 10여 명의 젊은 사람들이 모여 논의 결과, 바로 다음 날인 3월 20일 외읍면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친일 세력의 반성과 자숙을 촉구하는 경고문을 수십 장 작성하였으며, 동시에 다양한 크기의 종이를 활용하여 태극기를 수십 장 제작하였다. 3월 19일 이른 새벽부터 외읍면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제작한 경고문을 곳곳에 붙여 사람들이 읽고 만세시위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이어 오전 10시경, 외읍면 남산(南山)에 다시 모여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며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독립 만세 소리를 듣고는 달려와 함께 참여하기 시작하니 그 수가 200여 명에 달하였다. 군중과 함께 무안보통학교 앞에서 일제 경찰과 대치하다가, 다시금 시내를 행진하니, 시위대의 수가 더욱 늘어 오후 2시경에는 약 500여 명에 달하였다. 이에 무안군수와 목포경찰서장이 일제 경찰들을 지원할 병력을 이끌고 출동하여 다시금 시위대와 대치하였다. 이때 일제 경찰들이 총칼로 위협하였으나, 굴하지 않고 독립의 정당성을 설파하였다. 일제 경찰들은 그 위세에 눌려 감히 강제로 진압하지 못하였다. 이후 오후 10시 30분경 자진하여 해산하였으나, 이후 일제 경찰들이 시위의 주모자를 검속하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0년 4월 28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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